엄마는 외모 지상주의자

나는 엄마의 미완성 프로젝트, 언제까지나

by 홑들

일 년에 서너 번, 본가에 간다. 명절 근처나 부모님 생신 즈음에. 이제는 다 큰 것도 모자라 빼도 박도 못할 중년이건만, 이제 와 나는 다시 당신들의 어린 딸이 된 것만 같다. 집에 내려갈 때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오고, 만날 때마다 허술한 입성에 혀를 끌끌 차며 잔소리를 하고(사실 집을 떠나 대학을 갔을 때부터 엄마 눈에 내 옷차림은 거지꼴로 보였는데, 그 눈이 여태 그대로다), 자잘한 반찬을 바리바리 싸 주신다. 그럼 나는 그냥 모르는 척, 아직 그때 그 시절인 양 응석을 부리며 마음껏 애정을 누린다. 지나가면 다시 못 올 이 시기를 그냥 마음 편히, 소중히 즐기기로 한다.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한 엄마의 공격은 꽤 집요한 편이다. 일단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 나누고는 곧바로 스캔이 시작된다.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하며 대개는 못마땅한 소리를 한다. 내가 겉모습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대개는 취향의 차이일 뿐인데 엄마 눈에는 마냥 부족해만 보이나 보다(엄마, 그동안 말 못 했는데 사실 엄마 옷도 이상할 때 많아). 이번에는 그나마 엄마 취향의 옷을 입고 갔는지 “이렇게 입으니까 얼마나 좋니”라는 칭찬을 해서 어리둥절했다. 엄마의 ‘내 기준’이 얼마나 확고한지, 본인은 정말 나를 예쁘게 낳았는데 내가 못나게 컸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엄마, 본판이 좋으면 검댕을 칠해도 빛이 나는 법이랍니다. 지금 별로라면, 아쉽게도 엄마 생각이 틀린 거예요.



엄마 취향의 옷을 골라봅시다 (이미지: pexels, Ksenia Chernaya)


소설 『딸에 대하여』 속 엄마도 우리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운동화의 뒤축이 비스듬하게 닳아 있다. 올이 풀어진 청바지 밑단도 지저분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얘는 정말 모르는 걸까. 곤궁한 처지, 게으른 성격, 무신경하고 둔한 성품 같은, 남들은 알 필요 없는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왜 이토록 쉽게 드러내 보이는 걸까. 왜 남들이 자신을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걸까. 고상함과 단정함. 말끔함과 청결함. 누구나 최고로 치는 그런 가치들을 왜 깡그리 무시하기만 하는 걸까.” 아니, 이 어머니도 생각이 너무 많으시네. 딸에 대한 엄마의 편견과 앞으로 다가올 갈등의 밑그림으로 깔아놓은 소설 초반부의 문장인데, 그래도 이 어머니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딸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 엄마는 책 속 엄마보다 거침이 없다(만 배는 없다). 이번에는 옷이 나름 취향에 맞았으니 공격 대상을 바꾼다. 얼굴에 올라온 기미가 문제다. 사실 몇 번 들은 얘기인데 못 들은 척했더니 “피부과에 가라. 지금은 너무 덥고 볕이 세니까 가을에 가” 하며 구체적인 실천 지침까지 내려주신다. 뷰티 컨설턴트가 따로 없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뭐 저런 소리를 하나, 선 세게 넘네’ 싶은 말을 엄마니까, 그럴 수 있지 한다. ‘엄마도 나한테나 저런 소리 하지, 남한테 그럴 리는 없지’ 하고 한 번 뒤집어서도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샅샅이 (애정을 갖고) 살펴볼 사람이 어디 있나’ 싶어서 가슴 어디쯤이 뜨끈해지는 기분도 든다. 미처 눈치채지 못한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사람, 선을 얼마든지 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잔소리도 애정이라는 걸 서로 간에 아는 사람은 당연히 소중하다.



아침마다 물 한 그릇을 떠놓는 엄마의 루틴을 안다. 그 사랑을 안다. (이미지: pexel, Tara Winstead)


엄마에게는 비범한 측면도 있다. 사실 그 역시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할 수 있는 말이었을 텐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고3 때 챙겨 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탄광촌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였는데, 야망과 배신이 골자를 이루는 드라마다. 얼마나 푹 빠졌는지 정말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봤는데 중간고사 시험 기간 땐가 나도 고3이라는 현실 자각은 있어서 ‘아, 오늘만 보지 말아야겠다’ 싶었는데 엄마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드라마 시작한다! 빨리 나와” 하셨더랬다. 그래서 ‘아이참, 이렇게까지 하시면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못 이기는 척 같이 드라마를 봤다.


처음 회사에 취직했을 때도,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라”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조언이었다. 출세 따위는 엄마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묵묵하고 외골수인 나의 건강을 걱정했을 뿐. 지금도 그러신다. “너무 아등바등하지 마라. 살면 다 살게 되어 있다.” 가끔 이렇게 반쯤 해탈한 듯한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또 나는 그 말을 조금은 믿고 조금은 안심하게도 된다. 나를 잘 알고 나보다 오래 살아본 사람의 말이니 신뢰하게 된다.


이혼할 때도 부모님은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짧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이렇게 저렇게 할 계획이라고 하니,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그저 “그래,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셨다. 그 조용한 보고와 고독한 결단과 실행이 조금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믿고 맡겨주신 덕에 소란스럽지 않게 더 큰 끌탕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엄마의 모든 잔소리에는 "네가 소중하다"는 한 문장이 숨어 있었다. (이미지: pexels, Ashford Marx)


가끔은 부모님의 든든한 믿음에 부응할 만큼 옳게 잘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믿음과 사랑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다는 걸 안다.

그 어떤 잔소리라도 괜찮다. 괜한 트집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마음이라는 걸 아니까 다 괜찮다. 외모 지상주의라도 좋다, 선을 넘어도 괜찮다. 그 모든 말이 사라지면 이 모든 순간을 더욱 그리워하게 될 테니, 모쪼록 오래오래 기운차게 잔소리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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