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왔니?”
할머니는 잠깐을 못 참고 금세 또 물으신다.
“응, 혼자 왔어요.” “그러게, 이번에는 혼자네.”
아무리 대답해도 도돌이표다.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경증 치매 탓이다.
나의 이혼 소식은 한동안 침묵 속에 머물렀다. 집안에 일이 있을 때 혼자 본가를 방문하는 나를 보고 집요하게 묻는 어른도 없었다. 애매한 태도에 나름대로의 짐작을 할 뿐.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들은 나보다는 부모님의 범주에 있다고 봐야 했고, 그 소식을 알릴지 말지는 부모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는 쿨한 척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쿨하지 못한 면이 있는 당신들에게 그건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 2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이 그렇듯, 나의 이혼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그런 일이 되었다(사실 그간 좀 불편하고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그냥 터놓고 알렸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사이에 할머니는 깜빡깜빡하는 상태에서 잠깐씩 현실에서 벗어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금도 가끔 꺼내 보는 할머니의 흔적이 있다. 결혼할 때 삐뚤빼뚤한 글자로 ‘우리 손녀 행복해야 한다’라고 써서 주신 축의금 봉투. 그 마음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죄송함에 여전히 가끔은 가슴께가 뜨끔하고 눈가가 뜨끈하다.
드문드문 할머니를 뵙는 내 입장에서 당시는 복장이 터지면서도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귀엽고 애틋한 시절이었다. 할머니의 시간은 어딘가에 고여 있기도 했고, 먼 옛날을 더듬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10년이 지나는 동안 내 얼굴은 한 번도 잊지 않으셨다.
내내 집에 계시다가 마지막 몇 년은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문병을 간 어느 날. 병상 옆에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함께 간 아버지와 나 둘 중 누가 앉으면 좋겠냐고 여쭈었더니, “손녀가 소중하지”라며 내게 앉으라 하셨다. 사는 내내 장남, 장손, 아들, 제사 같은 가부장적 풍속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할머니가 보여준 그 진심 어린 눈빛과 말투는 내게 잊지 못할,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보호자로 소풍에 동행한 적도 있고,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면 우산을 가지고 학교로 오시기도 했던 할머니. 스무 살 때까지 한집에서 살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할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았을까.
그 비슷한 시기 사촌 동생의 결혼식 날, 할머니께 한복을 입혀드리고 곱게 화장도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뜬금없이 물으셨다.
“얘, 나 오늘 시집가니?”
갈수록 엉뚱한 말을 종종 하셨지만, 그래도 너무 앙증맞은 질문이라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응, 할머니 결혼하는 날이지. 좋아?”
그러자 할머니가 자못 심각한 듯 눈썹 사이를 좁히며, 벽에 걸린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아휴, 어떻게 해. 그럼 저 사람은 어쩌고? 저 양반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뒤통수를 치는 반전 대답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직도 그렇게 좋으신가. 그러면서도 다시 결혼 안 한다고는 안 하시네? 그나저나 지금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쯤을 맴돌고 있는 건가. 여기에도 계시고 저기에도 계신 것 같은 이상한 감각.
내가 뵌 적 없는 할아버지는 고향 사람들에게 두루 신망이 높다. 집안도 잘 건사하고 이재에도 밝아 다들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했다는 느낌이다. 말년에 병치레로 고생하시며 재산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건너 듣기로는 식구들에게 다정함과 권위를 겸비한 이상적인 분이라는 인상이다.
할아버지가 단신으로 월남했다는 건 어릴 때부터 들어 알았다. 하지만 이북에 부인과 자식이 있다는 건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도 누군가 먼저 말을 해줘서가 아니라 교양수업 과제 때문에 할머니에게 뭔가를 여쭙다가 알았다. 하여간 이 집안 식구들은 뭔가 터놓고 얘기하는 데는 재주가 썩 없는 편이다.
가끔 궁금했다. 할머니가 당시 치고는 꽤 늦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했는데,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나중에는 이북에 가족이 있는 할아버지와 결혼을 한 할머니의 선택에 자못 호기심이 일었다. 그늘에 가려진 이야기, 말해지지 않은 사연, 생략된 역사 같은 것이 이제 와 사무치게 아쉽다.
그런 할머니 입에서 낯선 이름이 튀어나온 것은 돌아가시기 1년 전쯤의 일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사람 이름이라는 것도 잘 인지하지 못했다.
“뭐라고요? 응호? 그게 뭐야?”
“뭐긴, 내 남편이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사람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할머니는 또 어느 안개 속을 헤매는지 뚜렷하게 알아낸 게 없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물으니, 그분은 할머니의 첫 번째 남편이라고 했다.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그제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할머니의 늦은 결혼, 이북에 가족이 있는 할아버지와의 만남, 그 모든 맥락이 선명해진다. 그 이름은 겹겹이 쌓인 세월 속에서 몇 번이고 새로운 기억을 덧대어도 첫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던가. 마치 초배지처럼.
사람들은 흔히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정신분석 임상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썼다. 모든 사람이 내담해서 더듬거리며 털어놓는 불평에는 언제나 과거에 받지 못했던 사랑, 현실적이거나 상상적인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한 시간 속에, 무수한 곡절이 있었을 터인데 할머니의 사랑에는 그리움만 있고, 한 점 원망도 없었다. 그 단순한 마음이 참 근사하다.
평생 가족과 함께였지, 혼자 산 적이 없는 할머니.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혼자 살지 않았다고 해서 혼자의 시간이 부족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마땅히 둘일 줄 알았던 시간을 홀로 너무 오래 계셨다.
그리고 지금, 할머니는 두 분 모두와 함께 계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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