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위협요소를 넘어야 하는 외줄타기
199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프로가 있다. 이휘재씨가 나와 다소 애매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고민한 결과 두 상황 모두를 전개시켜 선택에 대한 결과의 차이를 비교해 주는 것이었다. 당시 일요일일요일밤에 속했던 코너로 알고 있으며, 이씨는 이를 계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최고의 MC와 연예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촉매가 됐다.
지금 대한민국도 지극히 두 상황을 띄워놓고 고민하고 있다. 외교를 필두로 군사동맹과 경제통상 문제가 모두 얽힌 것으로 대한민국은 여지 없이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극렬하게 대립하던 냉전이 전개되는 시기에는 오히려 편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성장한데다 북한이라는 최악의 적과 마주하고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선택은 당연히 미국이어야 했고, 미국인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계화가 지속된 사회에서 외교안보에서는 미국과 한 배에 올라 있으며,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중국과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 이 가운데서 대한민국은 여지없이 선택을 종용받고 있다. 이전에도 지금의 상황을 광해군과 인조가 마주했던 명청 교체기로 설명한 바 있다. 그랬기에 대한민국은 2000년대부터 미중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친미 편향된 외교행보를 보이면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제는 다시 미중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시기로 다행스럽게도 돌아와 있다.
선택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그 이전 친미와 반북 및 반중을 통해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여지없이 친미만을 주장하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중에 나설 경우 우리가 먹고 살 재료가 없어진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로 인해 엄청나게 경상수지에 타격을 입은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즉, 미중 관계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미동맹에 의거해 미국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맞지만, 중국발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조건 흑백논리로 바라 볼 필요는 없다. 종국적으로는 당연히 누군가의 편에 서야 하겠지만, 우리는 가운데서 최대한 이익을 봐야 한다. 우리는 지나친 친미인 일본과 방법이 없는 친중인 북한보다 나은 상황이다. 양쪽 모두에게서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친중적 외교행태에 다소 의구심을 표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정도는 용인(?)해주고 있다. 일단 북핵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미국도 대북 외교 및 조율을 위해 한국을 동반자로 활용해야 하는 부분이 없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현 시점에서 지나칠 정도로 흑백 논리로 바라보는 이들은 대개 이전에 친미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던 이일 확률이 높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친중(도 아니지만 균형 외교로 비쳐주는) 행태를 비난하기 일쑤다. 참고로 이전 정부는 지금보다 더 중국과 가깝고자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드를 들이밀면서 모든 외교적 공든 탐이 헝클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즉, 대한민국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생존부터 삶의 질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을 고려했어야 했고, 현대 이후에는 미국과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둘 다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몸값을 더욱 높이는 길이다. 다만 미중이 충돌할 때는 이야기 가 달라진다. 선택을 강요받을 여지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필요한게 외교이고 관계이다. 서로 원수인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와 같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당황스럽지만 이를 헤쳐나가고자 해야 한다. 종국에는 더 똑똑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으면서도 나와 관계가 돈독했던 이를 택하는 것이 맞지만, 먹고 살 길이 달려 있는 국제관계에서는 좀 더 시간을 가지면서 관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미약하다면 답이 쉽게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파심에 지금 당장 한 쪽으로 줄을 서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켜볼 필요는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일예로 대한민국은 중국과 지난 1992년에 외교를 수립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늦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대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만큼 우호적이었다는 뜻이다. 즉, 정이 든 친구를 한 번에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대만은 이를 두고 일본에게는 뭐라하지 않으면서 한국에게만 엄청난 화살을 퍼부었다. 일본이 눈치게임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1'을 외친 사이 대한민국은 정을 고집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한 꼴이었다. 이 사안을 보면 빨리 노선을 정할 때는 빨리 정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이 여전히 모든 것을 주도하고는 있지만, 미국만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입김도 만만치 않다. 향후 발전가능성은 중국이 더 갖고 있다. 중국이 종국에 미국을 넘어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발전된 국가인 만큼 클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를 통해 먹고 살 길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관계라는 것이 꼭 천편일률적일 수만은 없다. 특히 국익과 안보와 관련된 문제면 더욱 당연하다. 미국을 천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간에서 살 방법을 고민해 본 후 최종적으로 선택을 해도 늦지 않다. 중국과의 국교 수립과 대만과의 외교 단절을 통해 배운 바가 있지만, 당시 누가 중국이 이처럼 성장할 것이라 예측이나 했다던가.
종국에는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미국의 줄에 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패권경쟁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길 바라는 것이 한국에게 훨씬 더 이득이라 보인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인접한 국가는 안보 문제와 외교적 입김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도 이를 잘 알고 있고, 북한도 당연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벌어진 미묘한 틈을 통해 중국을 이용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주한미군을 이용해서 안전보장과 동북아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라는 큰 매매인과의 거래를 통해 우리 배를 좀 더 불릴 필요는 있다. 이전처럼 무조건적인 누군가의 논리에 의해 빠져들 이유는 더더욱 없다. 지금도 친미 일변도만 주장한다면, 묻고 싶다. 친구사귈 때 가장 힘세거나 공부잘하거나 돈많은 이만 만냐나고.
이전 군사외교적 냉전과 지금 경제적 냉전이 대한민국에게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취하고 있는 이득은 이미 많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우리가 대중 교역에서 생기는 손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게 곧 중국과 통상문제 단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미중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여지는 좀 더 남아 있다.
(2019. 6. 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