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기독교 유래와 발전 과정
지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 이토록 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이해가 어렵다. 기독교는 유럽 문명의 핵심으로 대항해 시대를 지나 식민지 경영이 도래하면서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동태성을 보고자 한다면, 언어와 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예로 유럽열강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이 다분하며 북아프리카(마그레브 & 마쉬리크)를 제외한 인구는 개신교를 신봉하고 있다. 비단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시아는 예외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는 이슬람, 남아시아에는 힌두교, 동아시아에는 유학사상에 퍼져 있어서다. 열강들의 침입으로 인해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믿는 인구가 는 것은 맞으나 절대적이지는 않다. 식민 지배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부터 잉태해온 문화적 양식을 꾸준히 지켜온데다 기존 피식민 국가들도 오히려 이를 존중해 통치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믿는 인구 중 절반 이상이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먼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우선 청의 영향으로 조선은 천주교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청나라에는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선교사들이 오가던 곳이다. 청을 빈번하게 방문했던 마테오리치를 필두로 여러 선교사들이 청을 오가면서 종교를 설파했고, 조선도 이의 영향을 받았다. 최초 신부인 김대건과 그 이전 신도인 이승훈의 영향으로 조선도 천주교의 영향을 서서히 받기 이르렀다. 청과 교역이 본격적으로 움트면서 곁가지로 들어온 천주교는 민초부터 퍼져나갔다. 만인이 평등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결정적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반상제로 신분사회가 공고화된 조선은 병폐로 찌들었다. 기득권들은 국방의 의무도 다하지 않았다. 이에 천주교는 기존 조선 백성들에게 사상을 완전히 뒤엎는 말이 안 되는 것이기도 했다.
최초 천주교가 소개될 때는 학문적 형태로 들어왔다. 서학으로 소개되어 여러 다양한 문물이 거래됐으며, 자연스레 서양의 예절이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서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천주교의 율법에 다가서는 일이기도 했다. 조선 조정도 이에 불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흥선대원군도 천주교에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선교사들도 수용했다. 프랑스를 통해 외교를 다변화하고 청의 조공체제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인해 대원군은 서양 문명에 대해 완전히 배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극단적인 쇄국정책으로 귀결됐다. 대원군은 이후 실권했고, 이후 조선은 일본의 강제통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기득권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천주교 신앙이 달가울리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이 빈자로 머물렀던 백성들이 천주교를 품으면서 의식을 신장시켰다. 이어 천도교가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움텄다는 것을 보면, 조선이 서서히 (어찌 보면 서구가 가장 먼저 제시했던) 인간적인 개념을 배워갔다. 일제 치하 강압된 통치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종교계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을 보면 조선 말엽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천주교가 오랫동안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광복 전후를 지나는 와중에 종교에 대한 신념은 더욱 짙어졌다.
광복 이후 한국 전쟁과 군사 독재를 겪으면서 한국의 상황은 더욱 피폐해졌으며, 폐쇄적으로 연결됐다(60년대 부터 경제발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신교과 기존 기득권에 스며들었다(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1공화국 정부가 친일 관료들과 함께한 사이 지미파로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문화(즉 개신교 문화)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정부 수립 이전 미군정 치하로 접어들면서 미국발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미국식(즉 개신교에 가까운)은 한국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고 생각한다. 1공 이후 권력을 (운이 좋게도) 놓지 않았던 민족반역자 세력은 친미의 관점으로 개신교와 함께 했고, 지금에 이르러 한국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집단 중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서양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조선 말기 서학의 영향을 받았고, 일제 치하로 겪었던 강한 열등감이 미군정기를 지나면서 미국 사회를 오롯하게 동경하면서 개신교와 영합했다. 즉, 유럽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미군의 영향을 받았고, 기존 기득권의 미 사회에 대한 동경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스스로는 이해/해석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미국이라는 외교줄을 통해 휴전 이후 전쟁의 위험을 줄였고, 전쟁 이후 북한보다도 잘 살지 못했던, 최빈국인 한국에게는 생존의 유일한 방식이자 절대적인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아니 변해야 한다. 외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한 곳에 골몰하면 고이기 쉽상이다. 오히려 발전할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꼭, 중국을 포함한 외교 통로를 넓히고자 하면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친미이면서 개신교만을 고집하는 인사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개 그 뿌리는 기존 일제시대에서 민족반역자의 후손인 경우가 상당하다. 그 중 반성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늘 역사적 잣대를 묻어둔 채, 현실이 급하다는 이유로 늘 정치권과 지도층에서 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의 기독교도들이 많은 것은 상당히 독특하며, 교황이 내한한 것도 한국에 신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으로, 아시아를 찾은 것만으로도 상당히 드물다. 심지어 식민지배를 포함해 서양의 직접 영향을 받은 국가들조차 서양 문명에서 자유로운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가 많은 것은 역사적으로 실로 이례적이다. 또한, 전국 어디에서 교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광복 이후(혹은 그 이전부터) 개신교가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좋은 의미를 포함해 다양하고도 많은 영향력을 미쳐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국가가 자리를 잡는데 종교계의 역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면, 사회 기저에 유교의 영향을 받은 데다 이념적으로 개신교의 가르침이 녹아들면서 사상에 대한 포용성을 찾기 어려우며 빈부의 격차마저 심해지면서 이제는 특정 종교 자체가 기득권의 아주 강한 상징이 되고야 말았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이 이를 오용하고 기성 세대를 마치 주무르려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부터 공당 대표가 했던 행동을 보면 기존 세력의 유착이 얼마나 졸렬했고 심각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징후와 상황들을 보면, 불행중 다행으로 지난 탄핵 정국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으며,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바뀔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제 사상의 감옥에서 벗어나, 이념 논쟁을 벗어났듯이 서서히 다양한 집단과 사회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도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이제야 비로소 그 출발점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