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한민국 국방부가 속히 북측의 군사도발에 대한 엄중하고도 강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인 전동진 소장은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국방부의 논평을 내놓으며 북측이 군사 이동을 비롯한 각종 도발에 나서는 징후가 포착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발표했다. 지난 16일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발된 이후 청와대에서 김유근 1차장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은데 이어 곧바로 국방부가 북측의 군사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뜻을 내비쳤다. 통일부도 장관이 사의한 가운데 제 1차관이 공식입장을 내놓으며 이번 국면 수습에 나섰다.
국방부에서 메시지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북측이 군대를 개성공단 인근으로 옮길 가능성이 포착됐다. 개성공단은 참여정부 때 군사지역을 민간화시키면서 공업지구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안보 위협을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경제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전임 정부에서 북핵 위기가 고조된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폐쇄를 결정하면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존재 자체로 상대 전력 배치를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는 것만해도 우리에게 이익이었다. 비록 북측이 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됐지만, 일단 군사 이동은 감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군사 이동이 동반된다면, 철책선 인근의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북측과 지난 2018년 9월 19일에 GOP(General Outpost)를 비롯한 휴전선 부근에 군사 긴장을 전격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평양에서 벌어진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이다. 물론 비핵화 과정에서 동창리 미사일 기지의 미국 사찰을 허락한 것도 있지만, 군비 경쟁을 줄이고 상호가 적대 관계를 일정 부분 희석한 부분이 단연 큰 성과로 손꼽혔다. 그러나 연락사무소가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북한이 군대를 움직일 개연성이 많아졌다. 이에 한국도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의 전력 배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긴장 고조를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해야 한다. 북측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나 평화의 상징인 연락사무소의 일방 폭발과 암묵적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특사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절한 것은 모든 외교적 금도를 파렴치하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북측도 모르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10위 이내의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는 군사 강국이다. 지난 해에 책정된 군사력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에 이어 6위에 올라 있다. 전통적인 군사강국이며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을 앞서는 순위다. 물론 기관에 따라 순위가 바뀔 수는 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대한민국이 이 넓디 넓은 지구촌에서 대단한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은 주한미군과 함께 군사전력을 구축하고 있으며, 세계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단순 군사동맹을 넘어서는 포괄적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그러니 북한이 저렇게 징징대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대한민국의 순수 국방전력으로도 북한을 압도할 수 있는 것도 모자라 주한미군과 함께 기동할 경우, 대한민국의 전력이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이 상식 이하의 내용이 담긴 대북전단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상징적인 건물 폭발과 잇따른 금도에 높은 언사를 통해 한국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북한의 경제가 대북제재와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곤궁하고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기에 상당히 시간에 쫓기고 있으며, 또한 권력적인 내부 투쟁의 반로로 대남 전략을 아주 강하게 선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방법의 선택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졸렬했다. 또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중재아래 남북미가 합의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되나 미국이 돌연 합의에 나서지 않았고, 북한은 풍계리 기지 폭발과 동창리 기지 사찰을 허락하는 등 성의를 보였으나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동시에 북측이 기대하는 조건을 내주지 않은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 한국은 한반도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조율했고, 더 나아가 남북미 회동까지 일궈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게 필요 이상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은혜를 모르고 날 뛰는 무식한 존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면, 경제력과 국방력은 물론 외교력과 현재 여러 수준에서 가히 비교조차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는 대한민국이 굳이 북한의 저 같은 반응에 대꾸할 이유도 없다면 없겠지만, 항구적 평화를 통해 역내 안정이 도모되어야 한국도 더 많은 경제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그간 북한을 동반자로 대해왔다. 남북 관계가 평화 체제로 정착할 경우 경제협력을 통한 상생이 가능하며 철길 연결을 통해 한국이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위해 그간 공을 들여 남북미 체제를 발족하는데 한국이 가장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정작 자기네들은 이미지 개선에 나서지 않아놓고서는 미국이 설득되지 않으니 한국에게 저토록 수준 낮은 태도로 일관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느 누가 용납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에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강도 높은 어조의 논평이 나온 것으로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다.
설사 협상의 여지가 남았다고 하더라도 미국 대선이 끝나야 다시 정상들이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락사무소가 이미 사라졌고, 혹 다가오지 않길 바라지만, 군사적 긴장도가 점증한다면 더는 이전과 같은 데탕트는 고사하고 다시 관계를 되돌리긴 요원하다. 일말의 여지는 (거듭 강조하지만) 북측의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김여정 부부장이 내부 전력 다지기와 협상 기조 유지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3자 정상 간의 유지되고 있는 의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과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되더라도 북한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쓸지, 더 나아가 보수적인 미 관료들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의 결단을 내릴지, 북한도 영변핵시설에 대한 고집을 줄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에 한국은 보여주기를 자제해야 한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 교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열린 국제연합총회에서 비무장지대를 활용할 구상을 밝혔다. 냉정하게 실효성이 떨어진다. 북한이 적어도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아야 철길을 연결할 수 있으며, 또한 대북제재가 일정부분 완화가 되어야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활성화가 착수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의 말이 앞서가고 있으나 실무진에서 뒤따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관료들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박종철 교수(경상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가 논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참고해 이미 제시한 것들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할지를 좀 더 강도 높게 고민해야 한다.
즉, 이 모든 것이 선행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북측이 군사력을 휴전선 부근으로 이동하지 않는 가운데 현 기조가 유지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북전단문제를 법으로 금지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한국이 대북전단 관련 입법을 통해 더 이상의 문제 야기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간 행정부와 입법부는 해당 사안을 다룰 수 있었음에도 지나칠 정도로 미온적이었다. 이에 김 부부장도 헤묵은 이야기지만, 이를 매개로 강도 높게 한국 정부의 역할 부재에 대해 비난한 것이다. 관건은 역시나 북측의 군사 이동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다. 적어도 이 관문을 동시에 넘어야 다시금 남북미 정상이 한 자리에 앉아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북측이 군사 이동을 자제하고,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확률은 극히 낮거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이 만발의 준비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