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관리를 위한 CRM Long List 만들기
몇 달 전 회사에서 영업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툴을 조사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영업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B2B 고객들에 대한 정보 및 히스토리를 어딘가에 잘 쌓아놓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통 작은 기업들은 영업 활동 및 고객 정보를 영업 담당자 개인이 관리한다. 핸드폰 연락처나 이메일 기록이 전부인 경우가 많고 엑셀로라도 기록한다면 그나마 낫다. 때문에 영업 담당자가 퇴사를 하는 경우에 고객에 대한 정보나 히스토리가 쌓이지 않고 함께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어떨까? 재정/인력 등의 문제로 시스템을 구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예전부터 중소기업들도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는 툴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가 없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조사를 해보고 관련 툴들을 찾아서 경험해보았다.
영업 관리를 위한 툴을 보통 CRM이라 부른다. CRM은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약자다. 적당한 CRM의 후보군을 찾기 위해 G2 Crowd라는 사이트를 참고하기로 했다. G2 Crowd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리뷰해주는 사이트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본 사람들이 리뷰를 하고 별점을 매기기 때문에 실제적인 장단점들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어 사이트여서 리뷰 대상 소프트웨어들도 전부 영어권 제품들이었다. 물론 영어권 제품들은 고객이 global이기 때문에 다양한 검증을 거친 제품들이라는 장점과 자칫 국내 사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아래 캡쳐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G2 Crowd에 CRM Software로 분류된 제품들만 해도 수십 종이 넘는다. ㄷㄷ
이 중에서 G2 Crowd 사이트의 순위와 리뷰를 간단히 보면서 후보군 Long List를 정했다.
- Salesforce: 기업 사이즈에 관계없이 영업관리 부동의 1위 기업
- Hubspot: 예전부터 이름을 많이 들어본 궁금 대상 1위
- Pipedrive: 최근 구글이나 페북 광고에서 나한테 많이 보이던 툴
- Zoho CRM: Zoho에서 CRM도 만드는지 몰랐네..
- Freshsales: 순전히 G2 score가 높아서 후보군으로 추가
- ProsperWorks CRM: Google G Suite과 integration이 좋다고 해서 추가
- Insightly: 예전에 CRM 관심 있을 때 한번 둘러봤던 툴
- Highrise: 개인적으로 side project를 관리하고자 써봤던 툴
- Base CRM/Nimble: G2 score 순위를 보고서 추가
Long List를 만들다 보니 좀 많아졌다.. (욕심이 너무 과했..)
Long List 외에도 CRM 툴은 무지 많다. 저 많은 제품들이 존재하는 건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는 저 툴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있다는 뜻일 거다. 툴을 만드는 기업도, 사용하는 고객도 많다. 대부분의 제품이 SaaS 형태의 클라우드 서비스여서 인터넷만 되면 PC에 설치하지 않고 IE, 크롬과 같은 브라우저로 접속해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하나만 잘 만들면(물론 영어로 서비스를 한다면) 전 세계가 고객이 되는 시대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페이스북의 이사이자 유명한 실리콘밸리의 구루인 마크 안드레센이 오래전에 이야기했던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다.'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대다.
내가 뽑은 Long List에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큰 기업 제품이 포함되지 못했다. MS Dynamics CRM은 과거에 아픈 기억이 있어서 제외했고, 오라클 CRM은 Trial을 할 수가 없어서 제외했다. 유명하긴 하지만 꼭 대기업 제품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사실 대기업 제품은 기능이 많고 Customize가 잘 된다는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비싸다. 그리고, 요즘 기업용 소프트웨어 중에는 뛰어난 기능과 저렴한 비용을 무기로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기업의 사랑을 받는 제품들이 꽤 있다. 잔디, Zendesk, QuickBook, Asana, Trello, Smartsheet 등.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건.. Long List 중에 국산 제품은 한 개도 없다는 것. G2 Crowd 사이트가 주로 영어 소프트웨어드들에 대한 리뷰가 많은 것도 있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아직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글로벌하게 경쟁력이 있는 국산 제품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CRM을 고르기 위한 기준
이렇게 고른 후보군들을 사용해보며 평가하기 위해 나름의 평가 항목을 만들었다. 우리 회사에서 사용하려면 최소한 아래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1. 연락처 관리 -고객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함. 다만 연락처도 기업 정보와 담당자 정보를 나눠서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거래처의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history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 연락처에는 단순히 정보만 입력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 정보나 영업 정보와 연결되어 history도 기록이 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2. Sales 관리 - 개별 Sales 관리가 가능해야 함. 연락처 정보와 연결이 되어야 하고, 개별 Sales에 대한 활동 및 진행상황이 기록 가능해야 함. Sale를 위해 주고받은 메일을 기록하기 쉬운 방식이라면 더 좋다. 또한 영업 단계별로 관리를 위해 Sales Pipeline 기능도 제공해야 한다.
3. 활동내역 관리 - Sales 및 담당자, 회사와의 활동내역을 기록하고 관리하기 편리해야 함. 가능한 자동으로 기록이 될 수 있으면 좋음. 영업 담당자들은 고객사 담당자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메일을 보냈을 때 CRM에 자동으로 기록을 남겨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4. 모바일앱 제공 - 모바일앱을 제공해야 하고, 영업 담당자들이 사용하기 편리해야 함. PC를 열지 않아도 간단한 정보는 모바일로 조회가 가능해야 전화 연락 및 영업 단계 등에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음.
5. Custom Field - 대부분 외산 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항목이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음. 따라서 필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함.
6. G Suite 연동 - 회사에서 G Suite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G Suite 계정으로 로그인이 가능해야 하고 이메일 내역이나 일정 등과 연동이 되면 좋음.
7. Data import/export - 기존에 엑셀로 관리하던 자료를 한 번에 import 시킬 수 있어야 하고, 대량 메일이나 SMS 발송을 위해 데이터를 필요에 따라 export 시킬 수 있어야 함.
8. Report 기능 - 영업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 및 통계를 위한 Report 기능을 제공해야 함. Report 기능은 가능하면 다양하게 제공하여 여러 각도로 분석해볼 수 있어야 함.
9. API Integration - 향후 내부 플랫폼과 연동시키기 위해서 Public API를 제공해야 함. 다른 앱들과 손쉽게 연동하기 위해 Zapier도 지원하면 좋음.
이 평가 기준으로 각 CRM 툴들을 약 1주~2주 정도 사용해보며 나름의 평가를 했고, 후보군들 중 두 제품을 선정해서 보고했다. UI가 깔끔해서 좋았던 Pipedrive와 기능의 완성도가 높았던 Hubspot. 이후 회사에서는 최종적으로 Hubspot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잘 사용해오고 있다.
이어서 Hubspot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 글을 보고서 근래에(2021.01) 문의가 좀 들어와서 업데이트를 남겨두자면, 전 직장이었던 와디즈에서는 Hubspot을 도입해서 몇 년간 사용하다가 사용을 중단했다. 개인적으로는 더 잘 사용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의 툴이 잘 유지되려면 이 툴의 사용에 대해서 잘 알고 의사결정을 해줄 수 있는 책임자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CRM을 검토하시는 분들은 이 부분을 잘 참고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