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대로 했는데, 왜 자꾸 실패할까

-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찾아서

by 고양이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펼쳤다. 재료의 그램 수를 정확하게 지켰다.

필링 재료를 섞고 중탕으로 녹여 되직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 정도쯤이야. 실패할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믿었다. 그대로 하면 된다고.


레시피북은 연애 초반의 조언 같았다.
'이렇게 하면 오래간다', '이 정도가 딱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다 맞는 말인데 막상 해보면 하나씩 어긋난다.


타르트는 버터를 차갑게 유지하는 게 생명이라고 했다.
'이거 내가 잘하는 거잖아. 차갑게 유지하는 거.'(아니 너무 빨리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버린 게 문제였나)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손이 먼저 뜨거워졌다.
그래서 아무리 조심해도 감정이 자꾸 녹아버렸다.


레시피대로 했는데도 타르트는 부서지기 일쑤였고 필링은 한껏 부풀었다가 주저앉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재료보다 나를 먼저 탓했다.

오븐 앞에서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밤과도 닮았다.

나는 오븐의 문을 자주 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뭔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이번엔 끝까지 구워보기로 했다. 조금 타더라도.


다 구워진 에그타르트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건 옆이 찢어졌고 그 옆에 건 바닥이 두꺼웠다.
그래도 속은 흘러내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실패한 것 같아도 안쪽은 아직 버티고 있었다.


접시에 하나 올려놓고 식탁 옆에 서서 먹었다.
나는 항상 중요한 무언가를 할 때는 앉아서가 아니라 서서 하는 버릇이 있다.


레시피대로 했는데 실패했을 때에는 저자가 정말 중요한 디테일(자신의 영업기밀)을 빼놓아서 그런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2~3만 원의 레시피북 정가로 신의 한 수를 알려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시피를 따르는 이유는 결국 실패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나서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와!

에그타르트는 뜨거울 때보다 식은 뒤에 제 맛이 났다.

'너는 식고 나서야 완성되는구나.'

관계도 조금 더 낮은 온도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레시피대로 했는데도 실패한 이유는 레시피는 내 상태를 절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이렇게 하면 괜찮다.', '이 시기에 해야만 할 열 가지.'라는 문장들 속에서 살지만,
그대로 했는데도 마음이 자꾸 깨지는 건 무슨 이유야.(그러니까 환불해 줘.)

나는 아마도 더 식히고, 덜 휘젓고, 조금 늦게 꺼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실패했다고 망친 하루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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