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없는 마음을 유지하기
새해가 되면 절에 가고 싶어진다. 종교는 없지만 평소 불교템을 좋아하는 나의 본능이랄까. 이번엔 봉은사에 가고 싶었다. 3월이면 홍매화가 먼저 반겨줄 텐데 아직 겨울의 것들이 남아 군데군데 눈이 밟힌다. 들어가기 전에 불교용품점에 들러 엄마에게 새 염주를 선물했다. 염주에도 나름의 디자인 세계가 있어서 취향 따라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은 편이지만 또 각자의 띠에 맞게 고르고자 하면 인기 있는 아이템들이 표가 나게 비어 있어서 손길이 급해진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디자인에 맞는 본인 띠의 염주는 솔드아웃이라는 안타까움을 맞닥뜨리게 됐지만 물건이란 쓰는 사람 마음에 달린 거니까 괜찮다고 말해줬다.
나는 불교용품점에서 샀던 초를 들고 들어간다. 아빠가 써준 내 소원은 만사형통이었는데 어감으로 대충 아는 것 말고 제대로 살펴보면 '모든 것이 뜻대로 잘 됨'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뜻대로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다른 사심이 없어 알아서 잘 풀린다는 말일 텐데 초를 켜 소원으로 빌어야 할 만큼 어려운 지점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심 없는 마음에 닿기란 또 그 마음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점심 메뉴 하나 고르는 일에도 여러 마음들이 끼어드는데 말이다. 또 한 번 나의 불심 레퍼토리를 상기하며 사심 없는 마음의 형상을 그려본다.
해인사로 템플 스테이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곧잘 그랬듯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 지독한 겨울에 해인사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석가탄신일 즈음하여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잔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왠지 거기에 가면 그들처럼 뭔가를 찾거나 깨달을 줄 알았다. 별도로 마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 아니라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2박 3일을 보냈다. 까만 새벽 솜이불 안까지 파고드는 묵직한 종소리에 일어나 스님들과 새벽 예불을 하러 나간 것이 일이라면 일이었다. 간이라곤 없는 국으로 몸을 데우고 친구와 고무신을 신고 눈이 녹아 질펀한 길을 자주 걸었다. 완독하고 돌아오겠다고 가져간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는 반도 넘기지 못하고 도로 가져왔다. 근데 사실 나는 첫날부터 내내 떡 생각뿐이었다. 절에 도착해 방을 안내받고 쉬다가 갑자기 '아, 떡 먹고 싶다!'는 생각에 꽂히고 나니 정말 하염없이 떡 생각이 쏟아졌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했거늘. 해인사에서 나가는 길로 시내에 가면 떡부터 먹으리라는 생각만 했고 어쩌면 108배를 하는 동안도 그랬는지 모른다.
아주 심심한 늙은 호박국에도 입맛이 완벽하게 적응되어 맛을 음미하는 지경에 이른 마지막 식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잔반 하나 없이 깨끗한 식판을 들고 출구 쪽으로 가는 길에 나는 스님 앞에서 “헐?!!”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아담한 박스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세요.”라고 쓰여 있는 메모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노란 백설기였다. 지금껏 6번의 식사 동안 단 한번도 후식이라고는 나온 적이 없던 이곳에서 내가 떠나는 날, 마지막 식사를 마무리하며 떡이라니. 비닐 봉지에 떡을 담으며 그 따끈한 온기에 눈물이 조금 맺혔던 것 같다. 이게 뭐라고. 그러게요, 이게 뭐라고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의 작고 따뜻한 극락은 내 손에 따끈하게 올라와 있었다.
사심 없이 뜻한 바를 이루는 감각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타인이 심어주는 마음들 말고 내가 뜻한 바를 이루고자 할 때 어떤 마음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알아차려야 할 때 해인사의 마지막 점심을 다시 그려본다. 그럼 편안해지면서 내 마음에 들러붙는 다른 마음들을 쉽게 치울 수 있게 된다. 온전한 내 마음을 응시할 수 있다.
아빠가 써준 만사형통 초에 불이 밝혀지다 기도를 올리는 사이 꺼졌는데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동생이랑 아빠가 먼저 나서서 다시 불을 올려줬다. 왠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은 여기 올려진 모든 초의 온도보다 따뜻해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만사형통은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듯싶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