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베이커리 코너에선 크루아상을 번들로 판다. 나는 8개, 10개씩 들어있는 그것을 덥석 집어 오거나, 살까 말까 망설이며 한동안 머문다. 그냥 지나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어제도 배가 불러 딱히 먹고 싶지 않았으나 8개들이 번들을 카트에 집어넣고 말았다. 지금 아니면 구할 수 없다는 듯이.
빵순이 빵돌이 말들 하지만 나도 못지않다. 50여 년 전통에 빛나는 빵사랑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간식이 풍족하지 않던 유년시절, <해외토픽>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저 뜨거운 열대의 어느 지역에는 빵나무가 있어,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빵나무의 열매를 따서 칼로 깎아 먹는다고 하였다.
열매를 뚝 따서 깎아 먹으면 빵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극락의 세상인가! 너무 부러웠다.
어린 시절 제일 먹고 싶은 것도 빵이었다.
언니는 과일이라고 하였다. 과일이라고?
달콤한 과일도 맛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생으로 된 식물이지 않은가. 시골에 살아 지천에 널린 것이 식물이었다. 배가 고프면 밭에서 무를 쑥 뽑아먹는 우리였다. 가공의 맛이 아닌 생으로 된 '언니의 과일'이 의아했지만 '어째 좀 고상한 걸?'하고 말았다. 사람마다 최애는 다를 수 있으니.
빵 중에서도 크루아상을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계기는 2018년 여름에 다녀온 프랑스여행이다.
유럽 호텔의 소박한 조식에는 요거트와 우유, 크루아상과 페스츄리, 과일, 치즈가 나왔다. 프랑스에 왔으니 일단 크루아상을 많이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빵순이어도 먹을 줄만 알지 빵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의 지식밖에 없었다. 바게트, 크루아상, 마카롱 정도만 겨우 알았지만 뭐 어떠랴.
손보다 약간 작은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 버터 맛의 향기로운 크루아상을 나는 몇 번이고 가져다 먹었다.
간장 종지 같은 잔의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는 그 맛은 너무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바삭 부서지며 테이블보 위로 떨어지는 크루아상 조각들. 나는 재빨리 그것을 쓸어내고 또 가져다 먹었다.
본고장의 맛이어서 더 특별했을까. 그 여행 이전에는 굳이 크루아상을 집중적으로 먹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프랑스 여행이 크루아상 사랑의 시작이었지 싶다.
또 하나의 계기는 마키타 젠지라는 의사가 쓴 <당질 중독>을 읽고 나서다. 책의 내용 중
"같은 빵이라고 해도 식빵보다 버터를 듬뿍 넣어 반죽해서 만든 크루아상을 먹는 게 더 좋다"라는 구절에 나는 바로 꽂혔다.
의사는 비만이거나 대사성 질환을 겪는 사람들은 대개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며, 탄수화물만 제한해도 체중을 줄이고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빵도 단독으로 먹는 것보다 올리브유, 버터 등 유지류와 같이 먹어야 혈당치가 덜 상승한다고 실험결과를 들어 얘기하였다.
"식빵보다 크루아상이 낫다"라는 말은 바로, 나를 위한 말이었다.
'옳다구나!' 나는 물 만난 고기마냥 반기며 더욱 거리낌 없이 크루아상 섭취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바(ABBA)의 노래 ‘Our last summer’다.
노래는 지난여름 파리의 추억을 그리고 있는데,
센 강변이라느니, 에펠타워라느니, 즐겁게 웃으며 빗 속을 걸었다느니 하는 노랫말들이 이어지고, 코러스와 함께 노래는 절정을 향하며
하는 문제의 그 소절이 나온다. 나는 소리 높여 이 대목을 같이 따라 부른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자면 그동안의 여행들이 온몸으로 떠오르며 피부세포가 미세히 전율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래의 마지막마저 '패리스 레스또랑~~ 아을 래슽 써멀~~모닝 크루아상스 ~~~~'하고 페이드아웃되며 끝나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몹시도 크루아상이 먹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아바(ABBA)도 크루아상이 맛있었던 거야. 그러니 노랫말에도 넣었지’
하며 나의 크루아상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50여 년 찬란한 빵순이의 이력에 크루아상은 이렇게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8개들이 번들 크루아상을 차마 한꺼번에 다 먹을 순 없으니 연인과 이별하듯 애써 냉동실에 넣어 둔다.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이 몽땅 들어간 요, 요 유혹적인 빵들이 건강의 적, 비만의 적이라고 세간은 충고한다.
지당한 충고의 말씀에 뒤통수가 따갑지만, 크루아상을 하나씩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구운 뒤 맑은 커피와 곁들여 먹는 행복한 시간을 포기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욕심부려본다.
초승달 크루아상이여 영원히!
크루아상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건강도 영원히!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