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고 사라진 여인

by 버들아씨

오늘도 실종안내문자를 받는다.


- 00구 주민인 김00씨(남, 00세)를 찾습니다. 키 168cm, 하늘색 반팔티, 검정 반바지, 검은 운동화, 목걸이 (00 경찰청) -


실종인은 치매노인일 때도, 어린아이일 때도,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일 때도 있다.

문자에는 나이, 키, 입은 옷, 신발 등의 인상착의가 적혀있다. 본 사람은 연락을 달라고 한다.

이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찾았을까.

애타게 찾고 있는 가족들은 좋은 소식을 들었을까.


어느 날도 '디릭' 실종 문자가 왔다.

-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고 있는 어머니(00세)를 찾습니다...... 00구 00동 거주민으로...... -



'연두색 무늬 옷을 입고...'라니


이 문자를 보는 순간,

빨강 분홍 꽃이 만발한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어디론가 총총 길을 나서는 여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복잡하고 낯선 감정도 마음 한 편에

휘몰아쳤다.

'연두색 꽃무늬 옷'이라는 말속에 '소녀, 여인, 아주머니, 할머니'로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인생이 스며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약간 슬프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며 호젓하여 외롭기도 한 감정이었다.


내게, 그 실종문자는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라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고 사라진 여인'이라고 읽혔다.



하필,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고 사라진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꽃을 좋아한다.

길가의 꽃을 보고는, 음식점 창가의 꽃을 보고는, '아이~, 예뻐라!' 소녀같이 목소리가 가늘어진다.

나이가 든 거의 모든 여자들은 꽃을 좋아한다.

그녀들이 사용하는 물건에는 현실에 있는 꽃, 변형된 꽃, 상상화 된 꽃들의 수많은 이미지가 형형색색 크고 작게 그려져 있다.

몸에 걸치는 옷은 말할 것도 없다.

80대 엄마와 함께 옷가게를 가면 꽃무늬 천지다. 꽃무늬 블라우스, 꽃무늬 재킷, 꽃무늬 치마, 꽃무늬 스카프.

시장에 가면 또 꽃무늬 몸빼.

크고 화사한 꽃무늬부터 잔잔하고 귀여운 꽃무늬까지,

온갖 꽃의 잔치와 향연들이다.


꽃은 언젠가는 시들어 버린다. 그래서 더 귀하고 애가 탄다.

젊었을 때는 젊음의 아름다움으로 그 자체가 꽃이었다. 자신을 굳이 꽃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짧디 짧은 젊은 날의 꽃이 시들면 가버린 꽃 같은 젊은 날이 그립다.

꽃이 그려진 옷이라도 입어 ‘우리 기쁜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다.

꽃무늬 옷을 입으면, 꽃의 예쁨에 기대어 내 모습도 더 환해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나이 든 여성은 꽃을 좋아하고 꽃무늬 옷도 즐겨 입는 걸까.

나도 역시 꽃무늬에 자꾸 눈이 간다.


이런 생각들은 지나친 비약인지도, 나의 바람이 만들어 낸 추측일 뿐 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꽃은 그 자체로도 그냥 예쁜 것이니까.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은 어머니를 찾습니다.'

라는 문자는 가버린 봄날을 떠올리게 하였다.


<봄날은 간다> 영화에는

주인공 상우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두고 바람피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할머니는 가끔씩 집을 나가 온 가족이 할머니를 찾아다니곤 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젊은 시절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젊었던 그 시절의 남편을 찾아 집을 나선다.


실종 문자 속, 연두색 꽃무늬 옷을 입은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가버린 봄날을 찾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그 시절을 찾아 어딘가에서 헤매이고 있을까.



어느 훗날에,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떤 기억과 상념에 사로잡혀 나도 갑자기 집을 나서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도 실종 문자를 내겠지.


-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엄마를 찾습니다. 주름진 얼굴에도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를 하고 있어요...... 보신 분은...... 000으로 연락 주세요.-


노래를 흥얼거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청노새 딸랑대는 성황당길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 다......'


'그 여인은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돌아왔을까?'

궁금해지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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