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나이 숫자대로
금요일만 기다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던 날들도 많았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퇴근과 금요일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는다. 하루가 달팽이처럼 천천히 간다거나 일주일이 거북이처럼 느리게 지나간다는 생각도 많이 들지 않는다.
외려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 탈이다. 학년 말 일처리로 바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퇴근시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금요일이 벌써 코 앞이다. 해야 할 일들은 많고 시간은 넉넉지 않다. 동료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출퇴근만 다섯 번 했더니 바로 주말이 된 기분인데,
일터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보다는 당연히 이게 훨씬 더 나은 거겠지?
시간은 나이숫자의 속도대로 흘러간다는 세간의 말을 실감하는 나날들.
한 해가 쏜살같이 지나갔다는 표현은 너무 뻔해 나까지 쓰고 싶지는 않다.
# 일주일의 표정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오래전 직장인의 일주일 감정을 아기얼굴로 표현한 유머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아기들이 귀여워서 웃고, 다음엔 아기의 표정을 요일별 직장인의 감정에 매칭한 절묘함에 웃었다. 새콤달콤 웃고 싶을 때면 나는 가끔씩 이것을 찾아본다. 검색만 하면 여기저기 뜨는 사진들이다. 그것을 여기에 그대로 올릴 수는 없어 AI에게 일러스트로 바꿔달라 했더니 이렇게 귀여운 그림이 나왔다.
월요일엔 출근하기 싫어 앙앙 울고,
화요일엔 정신 차리고 업무에 집중,
수요일부터는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
목요일엔 내일이 금요일이니 웃으면서 버티고,
금요일은 당연히 신나고 행복하고,
주말엔 닥치고 꿀잠.
# 수요일부터는 주말권
어느 해인가는 일터도 너무 멀고, 그곳 분위기도 나와 맞지 않아 출근하는 게 그저 괴롭기만 했다. 괴로움을 곱씹으며 듣던 출근길 라디오에서 '수요일부터는 주말권'이라 생각한다는 어느 청취자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수요일부터는 주말권'
실로 마법 같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수요일 다음은 그 주의 피로도가 최고로 높은 목요일이 기다리지만 이 억지스럽기도 한 말이 주는 위로와 격려는 대단했다. 그 말을 마음에 새긴 이후, 사포처럼 까끌거리던 마음이 수요일을 기점으로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는 기적이 벌어졌다. 위 그림 속 수요일의 아기표정처럼 말이다.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싶은 내 마음이 그 말을 버팀목 삼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주말의 서광이 수요일부터 비치기 시작하니 금요일은 어느새 한달음으로 내 앞에 와 있었다.
# 금요일은 주말의 이브
고대하던 금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마음이 달뜬다.
고단한 한 주의 밥벌이를 마치는 날, 행복한 주말을 목전에 둔 날. 내게 금요일 저녁은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주말의 이브가 된다.
성스러운 주말의 이브는 다른 요일들과 달라야 하는 법. '불금'이니 '신금'이니 하는 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리라. 하지만 매 금요일마다 활활 불타오르고 신나게 방방 뛸 수는 또 없는 일이니, 매주 돌아오는 금요일을 나는 소박하고 단출하게 즐기기로 한다.
나 혼자만의 홈파티!
금요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저녁 겸 안주거리로 무엇을 고를지 즐거운 궁리를 한다. 한두 가지면 족하다.
집 근처 트럭에서 기름을 쫙 뺀 바비큐 치킨을 사갈까. 푸짐한 요리를 배달시켜 먹을까. 이도저도 귀찮으니 편의점표 어포나 감자칩 같이 가벼운 스낵으로 할까.
# 최종 선택은 맥주!
명색이 술수저의 딸로서 주종을 가릴까만은,
나 홀로 홈파티를 하는 금요일 저녁에는 탄산 짜릿한 황금빛 맥주를 마시고 싶다.
겨울이니 따끈히 데운 정종도 좋고, 고독하고 우아한 여인처럼 와인도 좋고, 캬! 눈 찡긋 소주도 좋지만, 한주의 회포를 푸는 저녁엔 차갑고 알싸한 맥주가 나에겐 딱이다. 5일 동안의 사회적 가면들을 시원한 황금빛 액체가 깔끔하게 씻어주고, 목에 걸린 듯한 한 주의 아쉬움과 후회들을 톡 쏘는 하얀 기포가 상쾌하게 쓸어가 준다.
가족들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거실에서, 저녁거리 겸 안주와 함께,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보며 마시는 맥주.
조촐한 나만의 홈파티.
맥주 한 잔 들고 내가 나에게 건배한다.
오늘 저녁엔 아무 생각 하지 마. 명치에 걸린 것들은 잊어버려. 잠깐쯤 망가지면 더 좋겠어.
"치얼스"
이번 주도 수고했다. 토닥토닥!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