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시, 반쯤 산문 2
이른 아침,
꽉 찬 요의에
잠 덜 깬 채 들어간 화장실
무심코 내려다본 구석
조그만 거미 한 마리
쌀알만 한 몸집에
실처럼 가는 다리로 타일 벽을 오른다.
가냘픈 다리로
검은 몸통 떠받치며 간당간당 올라간다.
아기티 겨우 벗고 세상에 나왔나,
가볍고 여린 몸이 나풀나풀 휘청댄다.
보이지 않는 줄을 타고 거미는 위로 위로 올라간다.
투명한 줄에 매달려 대롱대롱 올라간다.
한 뼘도 못 가 주르르 떨어진다.
놀라서 멈춰 있다 다시 기어오른다.
구원처럼 줄을 잡고 오른다.
또다시 미끄러진다.
내 눈앞의 너는 다리 8개 달린 시지프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듯
가늘디 가는 다리, 쌀알갱이 같은 몸으로,
떨어지면 올라가고 또 떨어지면 또 올라간다.
여리고 조그만 몸으로 어디를 향해 자꾸만 오르는 것이냐?
화장실 저 천장구석에 네 작은 집 지으려 그러는 것이냐?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힘이 빠진 너는
마침내 쭈우욱 화장실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구나.
떨어진 너를 가만히 다가가 지켜본다.
바라보는 기척에 움직임을 멈춘다.
움직이던 다리가 엉킨 채 굳어있다.
죽은 체하며 미동이 없다.
계속 보고 있으면 꼼짝 하지 않느라
네 작은 몸 마비되듯 저려오겠지.
모른 체하며 자리를 뜬다.
물 한 컵 마시고 가보니 사라지고 없다.
허공에 대고 속삭인다.
거미야,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었니?
우리 손이 닿지 않는
높고 외지고 어둡고 아늑한 곳으로 가서
명주실같이 보드랍고 가는 줄을 엮어
낭창낭창 예쁜 집을 지으렴.
아침에 네가 보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어릴 적 할머니가 그러셨어.
밤에 네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도둑이 들 거라고도 하셨지.
네가 찾아온 곳은 삼십 년 다되어가는 오래된 집.
너를 봐도 나는 놀라지 않아.
바퀴나 개미를 보는 것에 비하겠니?
훨씬 더 반가운 걸.
이른 아침 너를 봤으니
나는 오늘 괜찮은 하루를 보내게 될 거란다.
멋진 하루를 기대하게 해 준 거미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