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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Nov 01. 2020

노량진 수산시장

기자수필1을 마치며


  2020년 8월 초.  출입처가 바뀐 나는 급하게 휴가를 계획했다. 휴가 첫날 아침 가족들이 저녁을 함께할 민어회를 사기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그제서야 몇 년째 철거반대농성을 벌이던 옛 노량진시장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본 구역은 수협중앙회 사유지로써 2019. 8. 9(금) 부로 법원의 강제집행이 완료되었으며, 현재 폐쇄중인 상태로 철거대상 지역입니다.”

  이미 새 건물이 자리잡은지 몇 년 지난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물도 끊긴 곳에서 투쟁하던 이들은 일부는 합의해서 새 건물에 들어왔다고 했다. 새 건물에서 바라본 텅빈 옛 시장터를 바라보니 수습기자 시절 새벽 방문했던 2017년 12월 수산시장의 풍경이 떠올랐다.


  27일 오전 4시경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서쪽 출입구로 들어가자 경매시장이 한창이었다. 경매시장이 열리는 면적만 약 648㎡. 언뜻 보기에도 약 150여명이 경매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경매시장은 품목별로 나눠져서 4~5개 품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경매를 주도하는 경매사가 탄 차량 앞에는 노란색 박스에 해산물들이 담겨 있고 그 주위에는 각각 다른 번호가 적힌 파란 모자를 쓴 중매상 50여명이 경매에 참가하고 있었다. 꼭 유세차량처럼 경매사가 올라탈 수 있게 만들어진 경매차에서는 경매사가 마이크를 붙잡고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리듬에 맞게 내뱉고 있었다. 경매사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컴퓨터를 보면서 경매를 조율했다. 앞에 있는 상인들은 그 말들을 다 알아듣는 듯 가격을 올리며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경매차와 상인들 사이에는 노란 박스에 담긴 활어들이 힘차게 움직여 물을 튀겨냈다.

  활어 경매시장 판매담당 김범석 씨(41)는 “오후 11시 반에 나와 다음날 오전 9시경에 퇴근한다”며 “한 막(한 품목)마다 10~20분씩 열린다”고 말했다. 경매가 진행 중인 공간 옆에서는 다음 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노란 박스에 물을 담고 해산물을 담아 놓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김 씨는 “경매시장은 1시경부터 시작된다. 문어, 어패류의 경우 1시경부터, 꽃게류는 3시, 활어는 3시 반 등으로 수산물별로 시작시간이 다르다.”고 말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 파장은 없냐고 묻자 그는 “태안에서 시장에 들어오는 것에는 바지락, 톳 등 어패류가 대부분이지만 지금은 아예 태안산 해산물은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기름 유출사고 때문에 소비자들이 태안에서 난 수산물을 꺼린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시장 전반은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올해 들어서 노는 날에도 사람이 없다. 주 5일제가 되고 나서 손님이 없다”며 의아해했다.

  내년이면 대통령도 바뀌는데 바라는 소망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명박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겠지마는 노무현이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이곳이 특수한 사회이다 보니 몸이 건강한 게 제일이다. 또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쪽에 위치한 경매시장을 지나 반대쪽 동쪽 입구까지는 어림잡아 400미터. 그 길을 품목별로 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목포상회, 충남상회, 주문진 상회 등 지명을 상호로 한 매장들이 대부분이었다. 활어, 선어, 패류 순으로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매장이 구분되어 있다. 이른 새벽부터 상인들은 분주하게 손수레로 스티로폼상자에 담긴 수산물들을 나르고 있었다. 노란 앞치마와 장화, 장갑은 그들의 필수품. 판매대에 수산물을 담느라 또 싱싱한 수산물들이 파닥파닥거려서 여기저기서 물방울이 튀었다.

  상인들은 추위를 달래듯 통로 앞에서 난로를 때며 불을 쪼고 있었다. 충남상회의 주인 60대 여성은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아들이 나와서 일하고 새벽에는 자기 부부가 나와 일을 한다고 한다. 올해 경기와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묻자 그는 “뭐 우리 같은 사람이야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다. 먹기 살기 힘든 것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요즘 장사가 안 되는 건 사실이다. 작년만 해도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연말에도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아무래도 태안 때문에 수산물에 대해 사람들이 경계하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내년에는 그냥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돈 좀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며 새해를 맞이하는 소망을 표시했다.

  매점 운영자 김모 씨(60)도 매장 상인들처럼 살기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희한하게 손님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른다는 게 문제다. 올해가 가장 살기 힘들었다. 서민들이 느끼는 것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이지 않은가. 살기가 어려우니 손님을 놓고 알력다툼을 하고 싸우는 일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이명박 당선자는 앞으로 잘 하실 것 같다.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줬으면 좋겠다.”며 다음 정권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동문 부근에는 주로 중도매업자들이 경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어 놓고 자신의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패류 중도매업체인 삼풍상회 전용훈(34) 사장은 “어패류 경매는 1시에서 시작해 3시경 끝나기 때문에 주로 시간대가 맞지 않는 소매업자들에게 중개를 한다.”며 중도매업의 방식을 설명했다. 중국산 수산물에 대해 묻자 그는 “중국산 수입품이 약 반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어차피 수산물 수요가 국내 수산물의 공급을 훨씬 초월하기 때문에 중국산 수산물로 상인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올해도 어렵지만 내년이 더 문제다. 연말인데도 (판매를) 봄 정도밖에 못하고 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없다면 우리 상인들은 정말 살 맛이 안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동문 끝에 위치한 노량진수산주식회사 총무과장 백승욱 씨는 태안 기름유출사고의 영향에 대해 “태안에서 들어오는 수산물은 여기 시장 수산물의 1%밖에 되지 않아 사실 시장에는 거의 타격이 없다”며 “사실 태안에서 들어오는 것은 바지락이 많은데 지금은 채취기간이 아니다. 3,9 월이 채취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올해는 80억 흑자를 봤다. 다만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사람들이 수산물을 꺼리게 만들었다는 것이 크다. 하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반응과 달라 의아해하자 그는 “상인들은 항상 살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저녁때에도 보면 여전히 수산시장내 횟집(식당)들은 송년회로 예약이 끝나 노량진역에서부터 시장까지 사람이 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진 시각. 이미 경매시장은 끝이 나 몇몇 사람들만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간혹 주부들이 가정에서 필요한 수산물을 사기 위해 매장에 들르거나 식당에서 재료를 사기 위해 상인과 흥정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수산물이 더욱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배달될 수 있도록 수시로 물이 필요한 탓에 수산시장 바닥은 항상 젖어 있었다. 수산시장의 상인들이 흘린 땀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직 파닥거리는 생선이 가진 생명력처럼 보이는 물이었다.


  나 노량진으로 향하게 한 건 카리스마가 있던 여자 선배, 바이스였다. 새해를 앞둔 수산시장 상인들, 민초들의 희망과 애환에 대한 르포를 하라는 현장 취재 지시였다. 그날 유독 날이 서 있던, 문이 닫혀있던 회칼 상점과 축축하게 바닥에 고인 물, 낡은 코트에 추레한 나의 모습, 취재가 끝날 무렵 밝아오던 태양이 유독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물론 이 기사는 신문 지면에 나가지 못했다. 아마 발제는 했지만 ‘킬’됐던 것이고 나의 취재파일만 보관돼 있을 것이다.

  수습 기간은 기본적으로 취재는 물론 기사작성에 대한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진다. 새벽 경찰서 마와리가 끝나면 낮에 터진 주요 사건 발생, 기획 기사 관련 취재를 한다. 저녁 무렵에는 회사로 가서 1진 선배들한테 기사 교육을 받았다. 미리 전날 취재한 내용으로 기사를 보내면 선배들이 꼼꼼하게 기본 기사 양식을 가르친다. 회사별로 기본 양식도 달랐다. 그렇게 몇 달 기사 교육을 받으면 자연스레 스트레이트 기사와 박스 기사 등 양식은 배우게 된다. 기자로서 기초적인 ‘문법’에 숙달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동기들과 만나 먹는 저녁 식사 시간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선배들 욕도 하고 힘든 점도 얘기하면서. 가끔 선배들이 술을 사주면서 조금 풀어주기도 했다. 물론 음주 후에 다시 경찰서를 새벽까지 도는 것은 힘들었지만 술 한 잔 걸치고 택시에서 자는 쪽잠도 추억으로 남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서른이면 한 권의 책은 낼 줄 알았는데 이미 10년은 더 지났고 여전히 목표이자 숙제는 달성되지 못했다. 

  위에 썼던 나의 노량진수산시장 르포처럼 이 글도 언제 활자화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쓸 것이고 언젠가는 다른 글들이 반드시 활자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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