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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ug 06. 2019

미드 '지정생존자' 보다가 인생 망할뻔한 이야기

Feat. 리더의 말 한마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계의 공룡 '넷플릭스'.


본가에 가면 넷플릭스가 설치되어 있어 영혼이 다 털릴 때까지 컨텐츠 정주행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동생이 그럴 거면 모바일에 앱을 깔고 보라고 한다. (TV 혼자 독점하지 말라는 뜻) 그럴 때면 나는 항상 똑같이 대답하고 넷플릭스 내 폰 설치를 거부했었다.   


안돼, 내 인생 망해



나 같은 이야기 금사빠 덕후프로정주행러가 넷플릭스를 만난다면 그야말로 현실의 내가 나인지 넷플릭스 속 내가 나인지 구분도 못하고 스트리밍의 바닷속에서 평생을 허우적댈 것이 분명하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부분에서 나는 나를 매우 잘 안다.


그래서 아쉽지만 본가에 갔을 때만, TV로만 보는 넷플릭스의 채널을 돌리다가 온 가족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지정생존자'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저 역할이 지진희고 저 역할이 배종옥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미드 '지정생존자' 시즌 1의 에피소드 1을 클릭해 버렸다. (전쟁의 서막)


그렇게 나는 미국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와 함께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된 남의 나라 대통령 톰 커크만을 만나게 되었다. (이 시즌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시작되었는데, 내가 처음 보게 된 지금은 트럼프의 세상인지라 드라마인데도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하루 아침에 대통령이 되신 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에피소드 8이 끝나 있었다. 에피소드 하나 당 40분 정도 되니 최소 320분 순삭.


에피소드 13 즈음을 지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온 가족이 넷플릭스에서 나오라고, 채널을 돌리라고 난리였다. 520분은 버텼는데 더 갔다간 한 대 맞을 거 같은 분위기. 그런데 '지정생존자' 시즌 1의 에피소드 13 즈음이라 하면 정말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에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블로거들도 그렇게 말한다.)


멈추기엔 늦었다.


그렇게 나는 2019년 8월의 어느 주말,
내 스마트폰에 넷플릭스 앱을 깔았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안 보냐며, 그 재밌는 걸 네가 왜 안 보냐며 성화일 때 단호하게 '인생 망한다'고 응수했던 것인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역으로 내가 요즘 주말마다 넷플릭스를 보는데 넌 절대 깔지 말라고 미리부터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넷플릭스의 세계로 인도하다 못해 스마트폰에 앱까지 깔게 만든 이 미드 '지정생존자'에 빠져든 가장 강력한 이유는 딱 하나, (물론 스토리의 엄청난 재미도 있겠지만) 바로 '대통령의 말' 때문이었다.


선출된 대통령도 아니고, 그저 국회의사당에서 본인을 뺀 모든 행정부의 구성원과 상원, 하원의원까지 모두 불의의 폭탄 테러로 사망하였기에, '지정생존'을 계기로, 하겠다고 손든 적도 없는 대통령이 된 주인공. 아무런 준비 없이, 내세울 것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권력의 시험대에 오른 그가 매번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의 가장 큰 힘은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였다.


연설문부터 기자회견, 외교적 대화, 동료들과 국민등과 나누는 대화 등 그가 하는 말들을 통해서 나는 대통령의 말, 곧 '리더의 말'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말 한마디에 천냥 빚, 아니, 천만 달러의 빚도 갚는다는 것은 진짜다.)


수천만달러 갚으시는 중



드라마이건만. 그것도 미국 드라마. 그럼에도 나름 나의 회사 업무분장 중에 '임원 연설문 작성', '경영진 대직원 메시지 작성'도 있는 관계로, 메모해두고 나중에 두고두고 써먹고 싶은 명문들이 많았는데, 주옥같은 문장들보다 더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이 있다.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통령을 TV로 보며 전 비서실장과 그의 지인이 나누는 대화. 대통령이 인터뷰를 정말 잘한다는 지인의 말에, 전 비서실장이 대답한다.

 

진심이니까.



우리 말로는 '진심이니까' 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의 느낌을 살려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이니까' 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언행일치'라는 것.

 



회사에서 CEO 레벨의 많은 리더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이었다. 소통을 원한다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리더가 하는 말이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믿도록 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조직 내 소통이 안된다며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 데이'나 '타운홀 미팅' 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은 특정한 '데이'에만 해서는 안되고, 소통은 '타운홀'에서만 이루어져서도 안된다.


그런데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을 해야 '뭔가 했다'는 티가 나고 나 역시도 '뭔가 한 것 같기 때문에' 무념무상 기획을 하게 되는데, 돌이켜 보면 담당자부터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대통령도 그렇겠지만 기업에서의 소통은 가랑비에 옷 젖는 일이라, 늘 잘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성과를 내는 것은 힘들었다. 간혹 아-주 간혹 리더들 중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꾸준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소통해 나가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달변'이 아니었다. '언행일치'였다.


사실 달변인 분들은 더 많았다. 하지만 달변이 아니어도 저 말은 진심이기 때문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말임을 듣는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전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가끔 이런 순간을 가까이서 경험할 때면 '진심은 전해진다'는 진부한 문장이 정말로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다.


경외와 존경심.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서는,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견딜 수 있었다고 하면 우울한 표현이긴 하지만, 견디는 마음 안에서도 의미와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타인의 마음이 다른 타인의 마음에게 진심으로 가 닿는 것을 느낄 때의 의미와 보람.





다시 넷플릭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드 '지정생존자' 시즌 1 깨부시기를 끝낸 후,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무려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이 테러를 당하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에, 그 와중에 시즌 2를 보지 않을 길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내 인생 망할 수는 없었다.


다급히 대체 시즌 몇 까지 있는 것인가! 하며 네이버 검색창에 '미드 지정생존자'를 검색하니 이 무슨 일?


하늘이 도왔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직접 제작한 시즌 3을 끝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만만세. 시즌 4가 캔슬된 사유야 제작비 문제부터 캐스팅까지 다양할 수 있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내 인생 구원하려고 캔슬했다고 생각할 지경이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즌 2 다음 에피소드를 클릭했으니까. 앞으로 800분 정도 남은 셈인데 그 정도 시간쯤이야 기꺼이 내어 주리. 대신에 시즌 3까지 정주행 완료하면 내 스마트폰에서 앱은 흔적도 없이 지워 주마.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넷플릭스.


 

아 이미지로만 보는대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미드 '지정생존자' 오프닝 타이틀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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