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한국의 주택전세제에 대한 글을 쓴적이 있는데, 그 당시 집갑은 안정되어 가는데 왜 전세값이 오르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어 한국에서 전세제가 형성된 배경과 시장에서 전세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분석한 글이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초기 집값은 안정되었는데 전세값이 오르는 것은 비정상이라면서 언론 등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경제학 논문으로 쓰다 보니 수식을 사용해 좀 복잡해 보이지만 요체는 간단하다.
한국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전세는 당시 전체 도시가구의 1/3을 넘는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산업화 시대에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워 전세 세입자로부터 부족한 자금을 조달한 셈이고,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는 은행의 예금 이자율이 낮아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를 절약하는 것이 예금한 이자로 월세를 내는 것보다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는 집주인 가구와 함께 사는 세입자가 많았는데,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감면에 따라 주인은 일부분을 전세로 주면서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자기 필요보다 좀 더 큰 1주택을 구입하고 집값 상승시 이익을 극대화하되 1주택으로 적용받아 양도시 세금을 절약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요즘엔 세입자가 주인과 함께 사는 걸 싫어해 다가구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의 인기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
그러나 이러한 메카니즘이 작동하기 위한 기본조건은 부족한 자금을 전세 보증금으로 조달해 집을 구입해 이익을 얻을 수 (혹은 기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값이 안정되어 집을 구입해 이익을 얻기 어렵거나 혹은 그러한 기대가 어려워지면 전세제도가 존립하기 어렵고 전세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아울러 전세와 월세가 서로 대체 관계에 있다면 이자율이 하락하는 경우 전세값은 더욱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전세가격은 매월 내는 임대료와는 다르게 시장의 수급 상황만이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나 이자율과 같은 변수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받기 때문에 때로는 큰 폭으로 오르고 내릴 수도 있는 것이어서 매년 몇 %로 규제하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크게 거스르게 될 수 있다.
오로지 권력으로 안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김상조를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브레인들로서는 시장의 흐름 정도는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임대차 관련 규제입법을 앞장서 지휘한 김상조와 요란스럽게 정의를 외치던 박주민이 법 통과도 되기 전에 뒷구멍으로 전세값을 올리고 피신처를 찾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부의 무리한 정책은 국민들의 선택을 왜곡하고 피곤하게 만들며 정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정치적 슬로건에 비해 훨씬 큰 피해가 오랫동안 시장에 남게 된다. 박정희시대 중산층을 위한 1970,80년대의 분양가 통제는 아파트 품질을 떨어뜨려 2000년대 이후 엄청난 재건축 부담을 안겨 주고 지원 대상이었던 강남 중산층은 이제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시장과 무모한 싸움을 벌이는 주택 정책의 모습은 4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정권들어 어리석은 싸움에 대한 승리의 자신감은 더욱 강화되었고 살의에 가까운 전의를 품고 시장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집값을 잡고 승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격을 높게 평가한다면 가격이 오르게 두고 정부는 재산세나 종부세를 합리적으로 부과하면 된다.
억지로 가격을 잡으면 가격을 잡을 대상이 되는 고급 주택이나 다주택자가 공급할 임대주택은 지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호화 주택을 살 생각이 없었던 계층은 고급 집값이 조금 잡힌다 해도 자기가 살려는 서민층 주택의 임대료가 올라 손해를 보고, 노영민 실장처럼 이 기회에 집을 모두 팔아치운 정부 관료들 정도가 집값이 하락한 뒤 다시 구입해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승리를 위해 국민들이 부담할 희생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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