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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Jun 05. 2021

투기는 전쟁을 벌이며 소탕할 범죄가 아니다.

투기와 전쟁을 벌이는게 정상적인 일인가?

 내가 아는 상식 범위 내에서 투기는 범죄가 아니다. 아직 대한민국 형법에 투기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세 차익을 노리고 물건을 사는 행위라는 투기의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투기는 값이 오를 것으로 판단되는 상품을 사서 이익을 내고 팔려는 합리적인 경제활동일 뿐이며 만일 투기가 범죄라면 자본시장의 중심을 이루는 주식시장의 거래행위는 모두 범죄가 된다. 경영참가를 목적으로 거래하는 대주주를 제외한 소위 개미들이나 국민연금을 포함해 자산운용기관의 주식거래는 모두 감옥에 보내야 할 것이다.(국민연금도 오를 것 같은 주식은 사지말고 떨어지는 회사의 주가를 받쳐주며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칭찬받을 일이 된다.)

 혹자는 생산 활동을 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하고 생산과 무관한 토지에 투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겠지만, 직접 생산활동을 하는 것은 회사 임직원들이지 주식 거래자들은 아니다. 물론 주식투자자들도 경영을 감시하니 생산에 참여한다고 강변하겠지만 그런 일이라면 토지 매입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직접 토지에 건물을 짓고 임대해 이익을 내든지 혹은 토지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찾아 임대, 매도함으로써 토지의 활용도를 높인다.

 LH 직원 토지 투기 사태를 맞아, 애초 싸움거리가 아닌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던 대통령이 이제 “투기적폐 해소”를 외치고, 여야는 물론 사회 여론까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낸다. 검찰, 경찰을 총동원하고 특검까지 가자고 한다. 집단 광기에 가깝다. 하지만 이 정권이나 야권의 비판 모두 핵심에서 멀리 빗나가 있다. 직무상 권한 혹은 비공개 정보를 이용했다거나 부동산 실명법을 위반한 행위는 밝혀내 처벌해야겠지만 투기를 범죄로 몰아 무리하게 수사하여 기소하려는 정치적 쇼는 보기 민망하다. 편법으로 농지를 대지로 변경한 행위는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가 아니라며 문제삼는 자들을 좀스럽다 비난하지만 오히려 더 중대한 법 위반행위일 수 있다. 

 그리고 LH의 개발 정보가 새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련 정보를 감추고 있다 주택공급을 쇼크수준으로 하겠다는 부총리 말처럼 제대로된 검토도 없이 전광석화처럼 발표해 그 사실을 전혀 모르던 매도자들이 싸게 팔아 손해를 보게 한 것이 문제이다. 김현매 전 국토부 장관은 신도시 개발 정보가 발표 당일까지도 새 나가지 않는 것을 보고 짜릿했다고 자랑하는데... 황당함과 무식의 극치일 따름이다. 정부의 생각에 따른다면 주식시장에서도 깜깜이 투자를 해야 하며, 회사는 끝까지 사업계획을 감추고, 정부는 관련 정책을 비밀로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터뜨려 많은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쳐야 공정하다 할 것인가?

 LH 직원들뿐만 아니라 개발계획에 참여하는 관련자들의 토지 투기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개발계획을 공식 검토할 때는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고, 혹시 미처 모르는 사람들까지 보호하고 싶다면 개발계획 발표 시에는 해당 계획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있는 토지매매는 일정 기간 소급해 매도자가 취소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면 된다.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들 이익을 볼 게 없다) 만일 이런 취소권이 토지거래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사전에 개발 정보를 충분히 인지(예컨대 매수인이 매도자에게 개발계획이 있음을 고지했음에도 그냥 싸게 거래하기로 양해)한 경우에는 취소권 배제 약정을 할 수 있게 하면 된다. 

 투기라는 경제 문제는 경제적 해법으로 풀면 된다. 더구나 30년도 전에 만들어진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을 조금 보완한다면(이 정권에서 한다면 또 하나의 재앙이 되겠지만) 정부, 공공기관의 개발행위로 발생하는 투기 이익은 대부분 환수할 수 있다. 예컨대 도로나 지하철 노선 신설, 역세권으로 이익을 볼 경우 일정비율을 개발 이익으로 환수할 수 있게 하면 노선이나 역사 위치로 다투는 일도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검찰개혁 운운하면서 모든 문제를 형사적으로 풀려는 사고의 구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장경제를 한다는 나라 가운데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려는 합리적 경제행위 (가격을 조작하려는 매점매석이나 거래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 투기행위를 범죄라며 전쟁을 벌이겠다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이글은 필자가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796840030364359&id=100001151983292 )을 수정하여 게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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