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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Sep 11. 2021

경자유전은 소중히 지켜야 할 원칙인가?

 요즘 하도 농지법 위반이 언론에 많이 보도돼서 농지법 문외한이 농지법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저 가끔 부동산 경매 때문에 전답을 경락받으려면 농지취득자격증명이란게 있어야 한다는 것과 농지는 농업 외의 개발행위가 제한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법조문이 6장 63개조문으로 되어 있고 1996년에 제정된 법률로  20 여년 지난 정도이니 알려진 것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았다. 다만 이 법은 종전의 농지개혁법(1949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법률(1973년), 농지임대차관리법(1987년) 등을 통합한 것이라 연혁상으로는 농지개혁법으로부터 따지면 70년이 넘는다.

 사실 농지는 1950년의 농지개혁법에 따라 임대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경 농민이 아니면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웬 1987년에 농지임대차관리법이?” 하고 봤더니 농지개혁법에 소작, 위탁경영, 임대차금지 조항이 있을 뿐 처벌조항은 없다. 아마 사문화된 것을 1987년에 현실을 인정하고 요즘으로 말하면 주택임대차 3법 비슷한 것을 만든 것 같다. 말하자면 이미 40년 전에 농지에서도 요즘의 주택문제 비슷한 것이 발생해 임대차 기간, 임대료 등을 규제하고 신고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1973년에 제정된 농지의 보전및 이용에관한 법률은 농지의 전용을 규제하고 경작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 무렵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농지 전용, 훼손이 문제로 대두된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50년대 농지개혁의 이념이었던 경자유전의 원칙은 소작제 금지로 1962년 헌법에 등장하고 1987년에는 헌법에까지 명시되었다. 어느 면에서 법률적으로는 더욱 강화되었지만 도시화, 공업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1960년대 전체 인구의 50%가 넘던 농업종사자는 2020년 4% 수준으로, 1500만에 가깝던 농촌 인구는 200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농업인구 및 경작지 면적 추이

 그러니 이촌하는 사람들의 땅을 이웃의 농민에게 팔도록 강제하지 않는 한 경자유전은 지켜지기 어려운 원칙인데, 헌법상 소작제는 금지되고 있음에도 이미 전체 농지의 50% 이상이 임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1987년 헌법(제 121조)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시되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얼마 전 윤석열 후보가 우리 사회가 경자유전 원칙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법률 전문가가 헌법에 명시된 내용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의아하다. 하지만 필자는 윤 후보가 어떤 생각을 갖고 한 이야기이든 그의 발언의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경제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시대는 대략 2차대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상황에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만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지만 실상은 이미 약화된 패전국의 기득권층의 기반을 와해하는 의미를 가졌던 것이고 실제로 승전국 가운데 자발적으로 농지개혁을 실시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의도 여하에 불구하고 농지개혁이 전후 해당 국가의 산업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경제는 농업 종사자가 전체 인구의 4% 수준이고, 농업의 국내총생산에서의 비중은 2% 미만이다. 그러니 전체의 2%를 가지고 소득 분배를 평등하게 하겠다며 경자유전을 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농지는 농민의 것이라고도 하고, 농업은 다른 산업과는 다르며 식량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거나 농지는 투기 대상이 아니라며 최근의 부동산 투기 비판에 편승하기도 하고, 논리가 궁하다 보니 경자유전의 원칙을 “농지 농용의 원칙”으로 변경하자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논리도 왜 농지를 다른 더 생산적인 용도로 변경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논리는 없다.

 우선 현재의 농업 생산이나 농업 인구의 비중을 볼 때 1950년대와 같이 소득분배를 이유로 경자유전이나 소작제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고, 다음으로 농업의 특성상 자경이 생산성이 높다는 이유로 경자유전을 주장하는 것 역시 이미 농지의 50% 이상이 임대된 상태이고 만일 임차보다 자영의 생산성이 높다면 시장에서 임차농은 퇴출되고 자연스레 자영농이 지배하게 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토지 투기가 죄악이라 금지해야 한다고 하면 농지만이 아니라 다른 땅도 직접 사용자 외에는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 나아가 경자유전을 다른 산업에도 적용한다면 생산시설은 절대 임차해서는 안된다고 억지를 부려야 할 것이다. 차라리 그냥 공산주의가 북한이 좋다고 외치는 것은 어떤가?      

 물론 장기적으로 영농할 생각이 없는 농지 소유자들은 농지 투자가 게을러져 생산성 하락으로 소유 농지의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농지를 매도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경자유전을 소유가 아니라 이용 개념으로 보자며 마치 남보다 한발 앞선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결국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할 따름이다. 농지를 보다 생산성이 높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아서 어떤 이익이 있다는 것인가? 농지가 환경을 보존한다면(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는 농지가 실제 그런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농지를 전용할 때 대체 녹지 조성을 의무화하면 될 것이고, 식량 안보론이라면 농지 자체를 보존하기보다 식량 비축이나 유사 시 각종 토지의 생산 농지로의 전용 계획을 세워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필자가 일부 정치인들을 포함, 농지를 불법으로 매매한 사람들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니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미 반세기도 넘게 지난 북한과 미국이 던져 준 낡은 경자유전의 이념에 매달려 경제발전을 막고 국익을 훼손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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