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나불거리지 말고 행동하기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는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드는 순간에서야 미적미적 하기 시작하지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매듭을 짓습니다. 이게 반복이 되니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줄 미래의 나를 믿게 됩니다(?) 미룰 때까지 미뤄도 미래의 나는 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줄 테니까! 그리고 고통스러운 벼락치기는 반복되며 탁월한(??) 나에 대한 믿음은 튼튼해져 가지만 그 고생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발 다음부터는 미루지 말고 차근차근해야지 수백 번 다짐하지만, 개학 하루 전 날밤을 새워 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던 아이는 이제 다 커서 결국 천하의 게으름뱅이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건 꽤나 오래전 일이지만 이제야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본능적으로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는 동네 근처부터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누님에게 자문을 구하고 소개를 받아 서대문구종합사회복지관 직원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의 입장과 태도가 아직 명확히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딱히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로 만나다 보니 서로 좀 더 고민해 보자 정도의 결과만을 갖고 첫 미팅을 끝냈습니다. 이후 동방사회복지회의 담당자를 연결해 주셨고 그쪽에서 내게 연락을 주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그쪽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럼 또 어디가 있을까.. 아름다운재단에 메일로 문의해 봤습니다.
제목: 자립준비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내용 : 안녕하세요. 이재룡이라고 합니다.
저는 영상/사운드 외주제작 자영업을 하는 40대 남성입니다. 수년 전부터 관심만 있었는데 방법을 몰라 현업에 계신 분들께 여쭙고 싶어 메일을 보냅니다. 재정적으로 충분하게 준비가 되어야 할 수 있겠다 싶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라도 시작해 보고 싶어 늘 고민만 하다 이렇게 용기 내 메일을 보내봅니다.
저를 포함해 제 주변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직종의 선후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처럼 모두 비슷하게 정기/일시 현금후원 외에는 방법을 모르기도 합니다. 저부터도 이런저런 형태의 정기후원을 해오고 있고 결연을 통한 후원도 해봤습니다만, 보람과 성취도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평소 '보람과 성취를 느끼며 꾸준히 해갈수 있는 봉사프로그램' 제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막막한 20대를 보냈던 터라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특히 마음이 많이 갑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상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믿을만한 어른들이 필요하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재능기부를 통해 그들에게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재능기부 후원자가 되고 더 많은 후원자를 찾아내 후원자와 수혜자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어 조금은 다른 형태로 아이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요. 시간내주시면 담당자분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봐도 참 두서가 없습니다. 게으름뱅이가 또 게으름 피울까봐 되는대로 후다닥 해버렸다고 변명해 봅니다. 답신은 빠르게 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1:1 결연, 취업과 개인지원은 사후 사례관리의 어려움과 개인정보 보호문제로 인해 다루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대신 자립준비청년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알려주었습니다.
https://cafe.naver.com/eighteenadult
카페에 가입을 하고 글을 남깁니다. 돕고 싶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이야기를 나눕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 인연이 있어 그쪽에도 문의를 했습니다. 이러저러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세요! 아 네~ 서울자립전담기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아동복지협회에서 운영하고 자립준비청년들을 전담해서 케어하는 곳이 있으니 거기로 연락해 보세요.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웬걸 이런 기관이 있었습니다. 서울자립지원전담기관은 2022년에 개소를 했습니다. 지금은 내란사범들로 흉흉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참 괜찮다 싶습니다.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메일을 보냅니다. 답장은 아직 없습니다.
기다리는 중 '열여덟 어른이다' 카페의 운영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글자를 통한 짧은 대화 후, 내일 통화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진전된 건 없지만 그래도 진도가 나가고 있어 다행임과 동시에 맨땅에 헤딩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면 부담스럽겠지. 그럼 전화로 최대한 내 생각을 전달해야겠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될까. 난 생각해 둔게 많은데 이걸 다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같아 보일까. 별 생각이 다듭니다. 내일 통화가 사뭇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