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서른 몇살쯤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을 했습니다.매년 탁상용 달력을 보내오는 것 외에는 가톨릭조혈모세포 은행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습니다. 지금은 어느새 40하고도 중반이 됐습니다. 어쩌면 난 영영 조혈모세포 기증을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부를 못한다면 소아암 환아들이 쓰는 가발을 만들기 위한 머리카락 기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1년쯤 길러 힘들었던 거지존을 지나 이제는 하나로 묶이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머리를 길러가며 그린 나의 모습은 섹시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웬걸 영락없는 추노꾼입니다. 현실이 이렇게나 녹록치 않습니다.
갈수록 더해가는 못생김에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어..."라며 하나뿐인 여자친구마저 장탄식을 늘어놓습니다. 농담처럼 서로 하하 웃곤 하지만 매일같이 거울을 보면서 암담한 현실에 좌절하곤 합니다. 딱히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이런 못생김을 앞으로도 2년을 더 견뎌야 하는게 공포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잘라야겠습니다. 갈수록 숱도 없어지고 흰머리도 많아지는터라 이 역시 내 생애 마지막이 될 기부의 형태가 될터인데 이렇게 포기한다는게 분하고 억울합니다.
처음 머리를 기르겠다고 미용실 선생님에게 이야기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되실 거예요(생긋)" 이었습니다. 택도 없는 소리 말라는듯 내게 전하는 산뜻한 그의 미소를 보며 반드시 해내리라 다짐했지만 나는 틀리고 그가 옳았습니다. 괜히 전문가가 아니더군요.
그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러보다 그동안 잊고 있던 '자립준비청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여덟살에 시설에서 나와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알아서들 잘 살아보렴! 세상에 던져지는 사람들. (최근엔 본인 의사에 따라 24세까지 재보호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시절 나같은 경우엔 던져진다는 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채 던져졌습니다. 이런게 던져지는 거구나 하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는데 아마 이 친구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일찍 가장이 되어 막막했던 20대를 보냈던 나는 그들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20대의 내가 간절히 바랬듯 그들도 믿을만한 선배, 어른들이 필요할테니까요. 내가 그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비록 나는 아직 재정적으로 환경적으로 충분히 여유있지 않지만 준비가 되면 시작해야지라고 생각만 하다 벌써 몇년이 지났고 아예 기억 저편에 재워두었습니다. 당장 가능한 선에서 작게라도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친한 누나들과 함께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해주면 어떨까. 한달에 한 번 정도 맛있고 건강한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배달해 준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자취를 하고 밥을 해먹으면 늘 밑반찬이 필요한 법이니까.
주기적으로 과일을 사서 보내줘볼까. 동네 과일가게 한 곳과 이야기를 잘해서 좋은 과일들을 저렴하게 구입해 보내준다면 어떨까. 자취를 하게 되면 과일 같은 건 비싸고 손도 안가 잘 안 사먹게 되는데 정기적인 과일섭취는 건강에 꽤 중요한 거니까 누가 좀 사주면 좋지 않을까.
배우고 싶은 것들을 지원해 준다면 어떨까. 학교나 유학을 보내줄만한 재력은 안되지만 학원비 정도는 나혼자 감당하든 주위 뜻을 함께하는 선후배들과 함께하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운드와 영상편집은 나의 업이니까 이 쪽은 직접 알려줄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주위에 좋은 선후배들이 많다!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결이라 함께 하자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금융, 언론, 건축, 부동산, 법률, 의료 등 각 분야의 전현직 프로들이니 어려움에 처하거나 상담이 필요할 때 조금씩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단톡방이나 카페 등에서 서로의 익명성을 보장하며 연결시킬 수 있다면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실타레가 끝도 없이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역시 돈 안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건 포기해야겠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다가가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맞춰봐야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