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L의 사랑,열한 번째

11. 여자는 작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해.

by 구름조각

남자 친구가 강원도 포천에서 복무하는 동안 L은 대학교 2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열심히 놀았다.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과 언니들과는 지금도 계모임을 하면서 서로 챙기고 있다. 사범대에 다니는 친구, 간호학과에 다니는 친구,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 모두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친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다들 각자의 삶에 치여서 서로 다른 길로 갔지만 여전히 친밀감을 느끼는 건 과거에 쌓은 추억들 덕분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언니들과 보낸 일상을 미주알고주알 편지지에 적어 열흘에 한 번꼴로 편지를 부쳤다. P는 편지를 읽는 것은 즐겁게 느꼈지만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지는 잘 몰랐다. 군생활의 훈련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일일이 하소연하는 건 남자답지 못한 것 같고, 가끔 화가 나게 만드는 선임이나 후임들 얘기를 하자니 설명할게 너무 길고 괜히 걱정만 시키는 것 같다. 편지지를 앞에 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나는 잘 지낸다'라고 한 줄 쓰고 나면 할 얘기가 없는 것이다.


P는 포병이었지만 공대 출신에 산악회 활동을 했다 하니 관측병으로 차출되었다. 관측병이 무슨 일을 하냐면 미리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포가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는지 관측하는 것이다. 한발 두발 정도 쏠 때는 그럭저럭 보이지만 다연장 로켓포를 쏘면 우수수 떨어지는 포를 일일이 체크하고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P는 망원경으로 하나 둘... 다섯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명중했습니다!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사회생활에는 적당한 요령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이런 일을 세세하게 쓰다가 걸리면 크게 혼쭐이 날 테니 편지에는 쓰지 않기로 하자. 군대에서 먹는 밥은 늘 부족하고 항상 허기지다. 근데 또 이런 말을 쓰면 L이 면회 올 때처럼 먹을 것을 잔뜩 싸서 올 것 같다. 직접 만들어 온 김밥은 참 맛있었지만 이 먼길까지 오는 고생을 시키는 게 미안해서 이제 면회 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 또 화가 난 것 같았지만 휴가 때 얼굴 보니 다시 풀어진 것도 같다. 여전히 여자의 마음은 오리무중이다.


L은 참호 격투가 뭔지도 모를 테고 군대에서 축구를 하거나, 경계를 서다 멧돼지를 봤다거나 하는 얘기는 들어도 재미가 없겠지. P는 아무도 없는 보일러에 앉아 보초를 서면서도 편지에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잘 지낸다' 다음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를 덧붙였다. 편지는 덮어 놓고 전공책을 펼쳐 놓고 봤다. 이등병 딱지를 떼고부터 보초를 서면서 틈틈이 몰래 요령껏 일본어 책이나 전공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군대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보니 사람은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이 거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P에게는 여자 친구의 편지에 답장을 쓰는 것보다 금속 공학 전공서나 일본어 공부가 더 쉬운 일이다.


그동안 오고 간 편지를 세어보니 L이 편지를 두, 세 통 쓰는 동안 P의 답장은 한통 꼴로 돌아온다. L은 비어있는 우체통을 보고 그동안 면회를 가기 위해 밤새워 김밥을 말고, 강원도까지 고생해서 면회를 갔더니 다음엔 오지 말라는 말이나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어디 그뿐이랴,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자신을 먼저 만나지 않고 선배들과 술 먹다가 결국 숙취가 덜 깬 채로 자대 복귀를 했던 P의 만행을 곱씹어 봤다. 다음에 얼굴을 보면 왜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 거냐고 따질 참이다. '가만 두지 않겠어...' 전투력을 모으고 있는 L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L은 최근에 대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보조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채화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워낙 어린아이들이 많아서 교육인지 양육인지 훈육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제대로 가르치려고 하면 꼭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초등학교 1학년 짜리들이 말을 안 듣고, 머리가 좀 컸다 싶으면 망나니처럼 심한 장난을 치는 고학년 애들도 있다. 가끔 가다가 귀엽고 착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었다.


'나는 학교 선생님은 못 할 것 같다...' L은 미술학원 일이 끝나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엄마가 아무리 졸업하고 학교 미술 교사를 하라고 다그쳐도 '절대 불가!'를 외치는 이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터덜터덜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유난히 마음이 쌀쌀하다. 가끔씩 이런 감정의 기복을 겪을 때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집에 가면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을 테니 혼자 감상에 젖어 있기란 불가능이다.


L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슈퍼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하늘을 봤다. 별이 드문드문 보인다. 내 남자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도 나와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까. 지쳐서 여린 마음에는 흐느적거리는 멜랑꼴리가 스며든다. 이런 감상을 홀로 풀어내지 못해 묵묵히 삭혀두다가 그림을 그리며 풀어내는지도 모르겠다. 평화롭고 따뜻한 가족을 바라는 마음을 깊이 숨겨 두었다가 둥근 원이 서로를 안고 있는 추상화로 그려내는 것이다. L은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고는 했다.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우체통을 열어 봤다. 그 안에 곱게 접힌 편지봉투가 하나 있었다. 봉투를 열어 편지지를 꺼내다 뭔가 작은 고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떼구루루 굴러가는 작은 고리와 편지에는 P의 휘갈기는 글씨로 잘 지낸다는 무뚝뚝한 안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잘 지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훈련소 동기 놈이랑 탄피 갈아서 반지 만들었다. 내가 다 손으로 갈아서 만든 거니까 안 예쁘다고 버리지 말고 잘 끼고 다녀. 좋은 거 못해줘서 미안하다. 다음에 휴가 때 나가서 보자.


그 흔한 보고 싶다는 말이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 같은 것도 없이 무뚝뚝한 말투로 쓴 한 통의 편지는 P의 성격을 고스란히 빼다 박았다. 입 바른 소리를 못하고, 무뚝뚝하지만 가끔 의외의 행동으로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L은 흠집이 난 구리색 고리를 왼손 약지에 끼워 봤다. 자세히 보니 금붙이 같이 광택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직접 만들어 줬다니 왠지 기분이 더 들뜨는 것 같다. 쪼그리고 앉아서 조그마한 탄피를 아스팔트에 갈고 있었을 P을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일도 키득키득 웃음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자고로 여자는 작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 남자의 서툰 정성과 진심이 담긴 편지 한 통이면 더할 것도 없이 사랑에 푹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후에 나의 어머니는 그 시절은 가난하여 그렇게 탄피를 갈아 반지를 만들어 주는 게 유행이었을 뿐이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괴랄한 센스로 사 왔던 촌스러운 하트 모양 귀걸이와 중국 출장 때 사온 옥구슬 팔찌나 짝퉁 명품 팔찌 같은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소중하게 간직해 주는 내 어머니의 서랍장 속에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접어드린 종이 카네이션과 중학생 때 써 드린 편지가 남아 있다. 그런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시간이 많이 지나 몇 번의 이사를 가도 늘 잊지 않고 챙기는 어머니는 여전히 살던 집 창고에 연애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를 챙겨 놓았다고 하셨다. 딱히 들춰 볼 것도 아니지만 버릴 수는 없는 것들. 과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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