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노인의 꿈

"당신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나요?

by 구름조각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운 한 가지는 사람들이 다들 자기만의 드라마 속에 갇힌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 가기보다 저마다 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자기만의 해석과 이야기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오래 묵은 기억일수록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더 극적으로 각색되어 전혀 객관적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얼핏 듣기엔 나도 내 인생에서는 주인공이라 자부하고 사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끝을 보기도 두려운 비극의 주인공처럼 살아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빛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니 인생이 퍽 불공평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옛말처럼 초라하고 비참한 삶에도 서사가 있고 사연이 있다. 특히나 노인들의 삶을 들어보면 그저 살아온 것만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 같다. 그 삶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뒤로 하고 말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일할 때 만난 할아버지 한분이 생각난다. 그날은 출근하자마자 깜짝 놀랐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도서관 직원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책을 찾아달라고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처음에는 애꿎은 직원에게 화를 낸다고 오해했고, 낡은 회색 점퍼 탓에 오갈 데 없이 도서관에서 시간이나 죽이는 할아버지라 생각했었다. 모두에게 개방된 도서관에는 종종 몰상식하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와서 직원들을 곤란하게 만드니 이런 무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들어보니 그 할아버지는 수채화 기법서를 찾고 계셨고, 대출 기록을 보면 그동안 빌려간 책들도 전부 미술과 수채화 기법에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나는 괜히 호기심이 생겨 책장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그분께 말을 건네었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가까이서 보니 왠지 그분이 다정한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 분이 읽을 책 찾으시는 거예요?
아니, 내가 읽을 책 찾아요.
오, 취미로 그림 그리시는 거예요?
은퇴하고 할 게 없으니 그림이나 배워보자 싶어서 책보며 연습하고 있어요.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또래의 여느 노인들 같지 않은 설렘이 묻어났다. 처음 보는 나에게 마음을 여신 듯 인생사를 늘어놓은 할아버지의 삶도 그 시대의 풍파를 맞아 상처가 많았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이북 땅에서 엄청난 부잣집의 막내 도련님이었다고 했다. 대궐 같은 집에 땅도 많아 부유하게 살며 가끔 사냥을 나가는 것을 취미로 삼는 한량이셨지만, 6.25 전쟁을 피해 단신으로 피난 오실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이 때문에 피난길에 오를 수 없는 늙은 어머니를 이북 땅에 두고 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평생을 한스러워 하셨다 했다. 모두 그랬겠지만 떠나올 때는 그것이 마지막일줄 몰랐을 것이다.


피난 온 남쪽 땅에서는 재산도 재주도 없어 먹고사는 일이 막막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맏아들로 태어난 분이 내가 만난 할아버지였다. 가난 탓에 13살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 자신이 번 돈으로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 공부시키며 한평생 사셨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유난히 큰 것은 젊은 시절부터 철공소에서, 조선소에서 철을 두드리는 일을 하느라 귀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바로 옆에 있던 나에게도 귀가 따가울 만큼 크게 말씀하시다가 당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셨다. 아마 이야기를 하다보니 옛날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빠져드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가난 탓에 학교 공부도 채 못 마친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여전히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 같았다.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할 법도 했지만, 기억 속의 아버지는 재산 보다 더 귀한 것을 많이 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코로나 이전에는 대학에서 무료로 여는 글쓰기 수업을 들으셨다고 했다.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눈엔 그간의 치열한 삶과 많은 희생의 세월이 비쳤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동안의 삶이 참 존경스럽다고, 앞으로도 자주 뵙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쉽게도 그분을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노년의 롤모델이 되어준 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 하시고 남은 여생에도 배움의 열정을 놓지 않은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나도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분이다.


가끔 산다는 게 기적이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이나 가진 것들로 따지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과 같은 공적이다. 그런 날이 모여서 모두에게 저마다의 역사와 드라마가 되는 것이겠지.


혼자만의 우스꽝스러운 상상으로는 우리가 죽어 신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일들을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것이다. 그러면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신이 손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듯 끄덕끄덕 우리의 삶을 듣다가, 이야기가 끝날 즈음 가만히 머리에 손을 올려 잘 살아왔다고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아마 전지전능한 신에게는 우리의 한 평생도 손주들이 유치원에서 새 친구와 놀았고, 새로운 노래를 배웠다 으쓱대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 될지, 뿌듯한 성장 드라마가 될지, 아니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신파 영화가 될지. 소설의 끝을 미리 보고 싶은 것처럼 내 인생의 결말을 알고 싶다가도, 그러면 사는 재미가 사라질 것 같다.



이 글은 다른 카페에서 개인적으로 연재하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s://cafe.naver.com/kukoldman/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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