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L의사랑, 열두 번째

12. 전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by 구름조각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산악회 모임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너네 아빠가 젊었을 땐 대단했었다. 남들은 장비 다하고도 벌벌 떨면서 올라가는 암벽을 로프도 안 매고, 운동화만 신고 성큼성큼 가더라니까. 너네 아빠가 대학교 연맹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산 잘 타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아버지 친구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옛날이야기란 살이 여기저기 덧붙여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장이 점점 심해지는 법이다. 옆 테이블엔 나의 아버지가 불뚝 나온 배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술을 잔뜩 먹은 데다 오래간만에 대학 동기들을 보니 기분이 들뜬 모양이었다. 저런 육중한 몸으로 암벽을 탔다고? 전혀 믿을 수 없다.


아버지의 진가를 본 건 중학생 때 아버지 후배를 만났을 때였다. 그분은 지금까지도 암벽등반을 취미로 하해서 인지 몸이 호리호리하게 날렵했다. 함께 암벽을 타러 가서는 나도 아버지도 장비를 착용하고 벽에 붙었다. 분명히 볼 때는 쑥쑥 잡히는 대로, 발 딛는 대로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땅에서 두 발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덜컥 겁을 먹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도 발을 옮기면 자꾸 미끄러졌다. 이내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 버거워 팔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추락하는 거 아니야?'


근데 웬걸 내려와 보니 내가 올라갔던 높이가 겨우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것이다. 꼴랑 요거 올라가 놓고 추락이니 팔에 힘이 빠지니...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놀라운 건 내가 그렇게 아등바등하던 사이에 아버지는 압벽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 와중에 아버지 후배는 "선배님, 예전보다 많이 못 하네요."라며 놀리고 계셨다. 눈으로 보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암벽 타기의 전설을 이제야 알아봐 죄송합니다.


L이 반했던 모습도 어쩌면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망설임 없이 높은 암벽을 오르고, 누구보다 빨리 달려서 결승점에 닿고, 힘들어도 투덜대지 않고 묵묵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


그러나 우리의 인생사가 다 그렇다. 눈에 띄는 사람은 기대를 많이 받는다. 그 기대는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 몸집을 부풀리고 마침내 깜냥이 안 되는 일도 덜컥 맡겨놓는 것이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누가 봐도 버거운 짐을 덜컥 받고도 남들의 그 초롱초롱 기대하는 시선을 보면 안 된다고 거절하기도 불편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런 시선들은 이내 압박감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과업에 도전하게 만든다.


P가 전역하는 날 술자리가 딱 그런 날이었다.


못 갑니다.
너 아니면 누가 가냐?
홀어머니 아시면 난리 납니다.
지금 인원 못 채우면 이번 행사 취소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대 갔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알프스 간다는 말을 합니까?


선배의 간곡한 부탁에도 난색을 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알프스 원정이라니 산악회에서 가장 큰 행사이자 전통 있는 원정이라지만 그 먼길을 가는 건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이다. 군대 다녀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거기다 준비해야 할 금액도 만만치 않다. 매일 장사하느라 허리가 휘는 어머니께 부탁하기 죄스러운 금액이다.


야 인마, 네가 명색이 산악회 회장인데 이 선배를 민망하게 할 거냐?
아, 그래도 안됩니다!
가라!
못 갑니다!
이 자식이!


설득과 회유에도 선뜻 넘어오지 않자 선배의 권위로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도 P의 입장은 확고했다. 알프스 원정은 지리산 종주와는 차원이 다른 고생을 해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등지를 넘나들며 알프스의 여러 암벽을 등반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곳은 이름도 유명한 아이거 북벽, 일명 산악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날 후로 P는 매일 선배들을 피해 도망을 쳐야 했다. 전역 후에 복학신청이라도 할라치면 학교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선배들에게 끌려가 일장연설을 듣기 부지기수였다. 그렇다고 집에 얌전히 숨어있으면 동기들이 찾아와 곤란하게 만들었다. 넉살 좋은 친구들이 P의 어머니 가게에 와서 살갑게 굴며 같이 소일거리라도 돕고 있으면 질색팔색 하며 화를 내지도 못했다. P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속도 모르고 북적이는 가게에 즐거워했다. 무덤덤한 아들이 말해주지 않는 학교생활과 아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작은 아들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한편 L은 전역 후에도 얼굴 보기 힘든 남자 친구에게 잔뜩 심통이 났다. '군대까지 기다려 줬는데 보람이 없네.'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알음알음 들려오는 소문에 P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해외 원정이라니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못해도 6개월의 기간은 더 필요하니 당장 복학도 못할 것이고 그만큼 졸업이 미뤄지고 취업도 미뤄진다. P의 빠듯한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그의 복잡한 머릿속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래도 그런 중대사를 결정하기 전에 여자 친구인 나와도 한 번쯤은 대화할 수 있지 않나?'


서운한 마음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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