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 달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의 일도 끝나지 않았고 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 가끔 안부만 묻는 사이가 된 것이다.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감정적으로 해소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6번의 상담을 통해 우울증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멀쩡하게 살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 같은 충격. 그 뒤로 의식 없이 오래 누워있던 사람이 걷기 위해 처음부터 걸음마를 연습해야 하는 것처럼 내 몸에 붙은 팔과 다리가 영 생소하게 느껴지고 통제가 되지 않았다. 우울증 상담을 받기 전처럼 밤에 잠들지 못하고 날뛰는 감정 기복에 고통스러워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믿는다는 마음보다 믿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 현실을 투명하게 볼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거짓말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머리로 따져볼수록 당연히 헤어져야 하는 문제인데 냉정하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전에 차단하라던 전화번호에 전화만 걸었어도 모든 걸 알 수 있었는데 난 문제를 직면할 용기도 헤어질 용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았다.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이 있는데 '너무 고민하면 되려 최악의 수를 두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워하던 나도 최악의 수를 두었고 다시 J와 만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다시 만났으니 J의 눈엔 내가 참 쉽고 만만한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착하고 어리석은 여자였고 상대방은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J는 내 코가 낮은 것 같다며 성형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서슴지 않았고, 나를 사랑하긴 하냐는 질문에 '그놈의 사랑타령 지겹다'는 말도 했었다. 나와 대화하고 가끔 데이트하는 건 즐겁지만 그 이상 요구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나에게 '사랑해'라는 밍밍한 말을 던지곤 했다. 난 그가 왜 어제는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오늘은 사랑을 모르겠다고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쩌면 그는 '사랑해'라는 말을 당근으로, '사랑을 모른다'는 말을 채찍으로 이용해서 날 길들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연애 초반에도 그가 나에게 흘리듯이 자신은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한 적 없고 누구도 특별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다른 때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남녀사이는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 같다는 말도 했었다.
결말을 아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이야기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쓴 사람은 이미 나에게 결말을 암시하는 여러 장치들을 숨겨 놓은 것이다. 그는 여러 번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내가 눈치가 없었다. 사랑을 모르는 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2달 만에 또 헤어졌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집에 가는 나에게 J는 "언젠가 내가 너 때문에 울게 되면 다시 연락할게"라는 말을 남겼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모두 헤어질 때 '언젠가는 한번 보자'라고 말하곤 했다. 난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믿고 오래오래 기다렸다가 아주 뒤늦게서야 그게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뱉은 말이란 걸 알았다. 지금 하지 못하는 사랑, 배려, 이해를 기약 없는 미래로 미루면서 지금의 이별은 모두 내 잘못인 게 아니고, 타이밍이 어긋났을 뿐이라고 합리화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J를 잊지 못했다. 그건 내가 그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날 너무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가해자의 얼굴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는 피해자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제대로 살지 않으면 이렇게 안쓰럽게 누군가에게 끌려다닌다. 나는 덜 사랑해야 했다. 관계에 퍼붓는 에너지를 돌려 나에게 써야 했고, 그를 돌보는 대신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그 시기에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된 책을 하나 읽었는데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란 책이다. 혼돈의 해독제라는 책의 부제처럼 나는 이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질서를 찾고 내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싶었다.
이제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내 인생을 되찾는 일은 단순히 변덕스러운 감정 기복을 위로받는 차원을 넘어섰다. 우울증 극복은 생존의 문제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내 인생을 바로잡고자 결심한 때는 2018년이 끝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