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함에 대하여

우리는 홀로 와서 홀로 떠나는 존재들이다.

by 구름조각
당신의 우정이 당신의 연애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고독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다. -A. 보나르 <우정론> 中

인간은 모두 고독하다.


아닌 척 웃음소리로 가려보려 하지만 모두들 마음속에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리는 구멍이 하나씩 있다. 주변에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비로소 혼자 남아 자신의 웃음소리까지 잦아들면 그제야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문틈 새로 부는 바람소리나 작은 구멍에서 공기가 새는 듯한 소리는 그 존재로 고독을 증명해준다.


어쩌면 고독이란 마음속 감정 같은 왔다 갈 것이 아닌 뼈에 사무치고 피부로 와닿는 감각 정보에 가깝지 않을까. 고독이라는 형체 없는 단어가 생생한 감각이 될 때, 뼈가 시리고 가슴에 구멍이 난 것 같다고 느낀다. 마음속 오고 가는 감정에게는 외로움이라는 아주 적절한 단어가 있고, 고독과 외로움에는 분명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큰 간극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의 동화 <어린 왕자>에는 뱀과 어린 왕자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구나..."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평생을 사막에서 살았을 뱀이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운 것을 어찌 알고. 신통방통하기 그지없으나 이내 이것이 하나의 우화에 불과하다면 뱀은 사람들 사이의 외로움에 지쳐 사막을 떠난 현자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마침 서양의 신화에서 뱀은 현명함의 상징이기도 하니,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깨달음을 찾으러 사막으로 떠난 현자를 작가가 만났다는 설정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물론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인간이 지독하게 고독한 존재라는 건 노인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 선명하게 느꼈다. 깨끗하게 정돈된 요양원에 상냥한 요양보호사들의 보살핌에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고독의 냄새. 늙은이들이 서로서로 모여 퀭한 눈으로 의미 없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 풍경은 왠지 간담이 서늘하게 만든다. 삶의 끝은 다 저렇게 생기 없이 바짝 말라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홀연히 떠나버리는 것뿐인가.


그 안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자식을 일곱 낳아 길렀다고 하셨다. 그 할머니께서 어떤 어머니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식을 일곱이나 낳아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그 삶은 너무 애처롭다. 인간세상에서 제일 질긴 끈이 부모 자식의 인연이라 했건만 그건 부모 쪽에나 해당하는 사항이고 자식들에게는 조금 느슨하게 잡아도 되는 끈인가 보다.


이상하게 사람은 자신의 고독은 잘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고독을 보면 그제서야 자신의 고독을 인식한다. 그래서 고독함을 눈 앞에서 지우고 치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나 또한 그날 요양원에 방문해서야 내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지를 알았다. '나의 마지막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자각을 하자마자 요양원에 가는 게 불편해졌다. 왠지 방문할 때마다 내 생명력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꺼려지는 것이다.


가끔 저렴한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의욕을 잃을 것만 같다. 값이 싸다는 건 포기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결혼도 포기, 연애도 포기, 먹고사는 일도 포기, 자아실현도 포기... 다 포기한 허무주의자는 자신이 바라던 공허 속으로 몸을 던진다.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으리라.


이런 허무함과 고독감이 자꾸만 의문을 만든다. 모든 게 부질없고 결국엔 혼자가 될 것이라면 우리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건가? 왜 사랑에 들뜨고 이별에 괴로워하며 병들고 늙어가는 몸으로 먹고사는 치욕을 견뎌야 하는 거냐고? 우리의 삶에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깨달은 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우리의 삶은 목적이 없고 그저 살아내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가야 할 곳이 없었고 그저 현재의 순간을 살아내면 된다고 한다.


그 말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해서인가. 난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밖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줄 았았다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처럼. 이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찾아보겠다 말한다. 그런 것처럼 헤어질 줄 알아도 사랑에 빠지고 언젠가 혼자가 될 줄을 알아도 지금 사랑하는 가족들을 아끼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끝내 혼자가 될 거라면 함께 있는 이 순간은 서로 사랑하자고. 끝내 의미 없는 일이라도 지금은 이 감정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니까. 언젠가는 깨어나더라도 지금은 달콤한 꿈속에 잠들고 싶어라...


문득 우리들 마음의 빈 곳에 바람이 드나들어 소리가 나면 그게 자기만의 노래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노래가 되기 위해 고독을 느끼고 가슴의 빈 곳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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