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친절이 불편하다..
친절한데 묘하게 불편한 사람들 관찰기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책에서 이 말을 읽은 이후로는 되도록 늘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굳이 상처를 주거나 모질게 대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데 가끔 과한 친절이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분명히 그의 말투도 상냥하고 나를 배려해주는데 나는 그 사람이 불편한 상황, 그런 상황들을 모아봤다.
더운 여름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땡볕에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웠는데 한 여자분이 들고 있던 양산으로 나에게 그늘을 빌려주신 것이다. 함께 길을 건너면서 낯선 사람의 호의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느님 믿으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그 사람의 친절은 포교용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목적을 숨기고 친절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 난 살면서 3번 정도 내 발로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이런 분위기에 괴리감을 느껴서 적응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교회 공동체가 서로 도와주는 모습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호의는 다 목적이 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도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친절. 그런 친절은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다른 사람은 아버지께서 중국지사에서 일할 때 운전수 역할을 해준 왕 씨라는 중국인이었다. 그 왕 씨는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땅부자인데 그저 무료함을 달래려고 기사 일을 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이 중국 여행을 가서 우리는 짝퉁시장에서 구경을 하면 왕 씨 아저씨는 옆 백화점에서 진짜 명품을 사 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부자인 왕 씨 아저씨가 유난히 나의 아버지를 좋아했는지 우리가 여행을 가면 매번 유명 관광지에 데려다주고 자기가 아는 맛집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다 스케일이 엄청난 곳이어서 애피타이저로 랍스터 회가 나오고 그 뒤로 음식이 끊이지 않고 계속 상을 뒤덮는 식당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았다.
몇 번을 호화로운 대접을 받고 감사를 전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부자의 호의인 줄로만 알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더니 대륙의 부자라 그런지 역시 한번 베풀 때 스케일이 남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정도? 그러다 하루는 왕 씨 아저씨가 자기의 친구와 함께 우리를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그 친구분은 연변 출신이라 한국어를 곧잘 해서 왕 씨 아저씨와 우리 가족 사이의 통역사 역할을 해주었다.
그날도 푸짐한 산해진미를 맛보면서 이런 음식을 또 어디 가서 맛보려나 감탄하고 있었다. 한창 먹고 있는 중에 왕 씨 아저씨와 친구분은 눈빛을 교환하고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나의 아버지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왕 씨 아저씨의 회사가 앞으로 아버지가 일하시는 회사에 물품을 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순간 식당을 가득 채우는 어색한 긴장감. 입맛이 떨어져 들고 있던 소고기 육포를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환대와 친절의 공간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삭막한 비즈니스의 공간이었고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분에 넘치는 친절을 넙죽넙죽 받았으니 생각지도 못하게 빚을 진 기분이다.
난 아버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곧장 진지한 비즈니스 모드로 자세를 고쳐 앉으시는 걸 보며 어른들의 삶이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날의 식사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양손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피를 나눈 우리 가족뿐이다.
그날 이후로 난 이유 없는 친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심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중에 몇몇은 친절을 거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에니어그램 성격유형을 배우면서 그렇게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끼쳐 대가를 바라는 성격 유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친절, 칭찬 등 아첨의 기술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다.
항상 이유 없는 친절을 더 조심하고, 내가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때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을 넘지 않는 정도만 친절하려 한다. 물론 그 적당선의 친절이란 순전히 내 기준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