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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05. 2021

콩나물 밥과 두부조림

시장에 가면 꼭 사 오는 것 두 가지.

    어렸을 때 시장 뒷골목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때가 1997년이었고 당시 저는 7살의 미취학 아동에 불과했지만 아파트에서 살다가 갑자기 화장실도 없는 좁은 집에 이사를 왔으니, 눈치껏 우리 집이 어렵다고 알았지요.


    저희 어머니의 친구분이 아직도 저를 볼 때마다 말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그 당시 7살이던 저를 문구점에 데리고 가서 인형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가격표를 훑어보고는 "아조씨 너무 비싸니까 그냥 가요"라고 했대요. 그분은 어린애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처음 봤다며 제가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세요. 그때 집이 어려우니 돈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조금 애어른 같은 꼬맹이였네요.


    좁은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겨울에는 요강을 쓰고, 큰 볼일은 집 앞 공중 화장실을 써야 했어요. 재래식 화장실에는 늘 고약한 냄새가 났는데 날씨가 더워지면 커다란 똥파리가 날아다니고 가끔 징그러운 거미가 내려오기도 했었죠. 날이 추울 때는 동생이 천식이 있어서 1층에 불을 때워놓고 어머니와 함께 잤고, 저는 2층 창고방에서 아버지와 같이 잤는데 가끔 아버지께서 저를 난로처럼 껴안고 주무셨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건 옆집에 두부가게가 있었는데 커다란 기계로 콩을 삶고, 갈아서, 콩물을 걸러 간수를 섞고 따끈한 두부를 만드는 걸 자주 보러 갔어요. 두부가게 사장님은 아이가 없어서 저를 많이 예뻐하셨는데, 옆에 앉아서 두부 만드는 걸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으면 금방 나온 두부를 뚝 떼어 맛을 보여주셨어요.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보드라운 두부가 얼마나 고소하던지... 그렇게 두부를 간식으로 야금야금 먹으며 그 집에서 만화영화도 보고 인형놀이도 하고 있으면 저녁시간이 되어 어머니가 절 찾으러 오셨어요.  


    차곡차곡 쌓인 추억이 떠올라서 옛집을 찾아가 본 적이 있지만, 그 두부가게도 없어지고 기억하던 시장과는 많이 달라졌더군요. 그래도 여전히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보단 시장 구경을 하고 물건 흥정을 하는 게 재밌어요. 집 근처에 5일장이 서면 장바구니를 들고 일주일치 먹을 채소를 잔뜩 사 와요.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사는 게 콩나물과 두부인데,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콩나물은 더 아삭하고 두부는 더 고소하더라고요. 기분 탓일까요?


    오늘은 마침 장을 보면서 콩나물을 사 온 김에 국을 끓일까, 무침을 할까 하다가 콩나물 밥을 하기로 했어요. 거기에 시장에서 산 투박한 두부로 두부조림을 만들면 건강한 고단백 밥상이 되겠죠.


    두부조림의 포인트는 두부의 물기를 제거해주는 거예요. 두부에 물기가 많으면 구울 때 기름이 많이 튀고 조리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두부를 넙적하게 썰어놓고 소금을 뿌려 키친 타올로 덮어놔요. 그렇게 20분 정도 두고 그 사이에 콩나물도 씻고 다른 재료 준비도 해놓는 거죠.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식용유를 두른 팬에 올려 노릇하게 구워 줍니다. 자주 뒤집으면 두부가 부스러지니 중불로 천천히 구우면서 한 번씩만 뒤집으면 됩니다. 양념장에는 다진 한 대, 다진 마늘 한 스푼, 다진 양파 반개에 피망이 있으면 조금 넣어도 좋아요. 재료는 다 잘게 다져 주세요. 거기에 고춧가루 한 스푼, 간장 2스푼, 굴소스 1스푼, 매실청 1스푼, 물엿 1스푼,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조금 넣고 섞어줍니다. 짠맛은 간장과 굴소스가 내주고 단맛은 매실청과 물엿이 담당하니 입맛에 따라 조절하면 되겠죠? 통깨도 있으면 술술 뿌려주고 타지 말라고 도 반 컵 넣고 은은한 불로 졸여줍니다. 국물이 졸아드는 동안 콩나물 밥을 하면 되겠어요.

    지난번에 표고버섯 솥밥을 하고 남은 표고버섯을 채 썰어서 같이 넣어 줬어요. 냄비에 들기름을 조금 넣고 표고버섯을 볶다가 불려놓은 쌀을 넣고 물을 부어서 한소끔 끓여준 후에 콩나물을 얹고 약불로 줄입니다. 압력솥이나 전기밥솥에 콩나물 밥을 하면 콩나물을 처음부터 넣고 끓이는데, 그렇게 하면 콩나물이 질겨져서 맛이 없어요. 전 콩나물 밥은 무조건 냄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콩나물이 다 익을 때까지 시간을 충분히 써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밥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어요. 이때 콩나물밥 양념장은 만드는 데 다진 마늘, 다진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통깨를 넣으면 끝입니다. 아까 만든 두부 양념장에서 단맛을 다고 생각하면 쉽죠?


    양념이 잘 졸아든 두부는 고소하고 부드럽고 시장에서 산 콩나물은 밥을 해도 아삭함이 살아 있어요. 두부조림은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버리면 맛이 없어져요. 콩나물 밥도 그렇죠. 요즘 날씨가 더워지니 냉장고에 두고 먹는 반찬보단 이렇게 한번 먹을 분량만 만들어서 먹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오늘 저녁 식탁에 고기반찬이 없어도 콩과 두부로 든든하게 단백질 섭취했어요.


    글을 쓰다 보니 낮에 시장에서 만난 두부 가게 아주머니의 동글동글한 얼굴과 친절한 말투가 생각나요. 어릴 적 저를 예뻐해 주신 두부 가게 사장님도 그런 동글한 얼굴을 가졌어요. 두부를 파는 사람들은 몽글몽글한 두부처럼 생김새도 동그랗고 부드러운 사람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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