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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06. 2021

들깨 죽순 볶음

새로운 식재료와 친해지기

    며칠 전 시장에 갔더니 삶아놓은 죽순을 팔고 있더라고요. 죽순을 먹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질이 너무 번거로워 보이고 무엇보다 겹겹이 쌓여있는 껍질을 벗겨 내는 게 쉽지 않아 보여서 요리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말랑하게 삶아 놓은 죽순을 파니까 냉큼 사 왔어요. 새로운 식재료를 보면 꼭 한 번은 사서 요리해 보고 싶거든요. 지난번엔 그렇게 비트를 샀는데 아직 냉장고에서 말라가고 있어요... 이번에 산 죽순은 좀 신박한 반찬으로 요리하면 좋겠네요.


    다른 분들도 요리하시기 전에 유튜브나 블로그에 폭풍 서치 하시나요? 아무래도 낯선 식재료일 때는 뭔가 안전하고 검증된 레시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찾아본 게 들깨가루를 넣어 고소하게 볶은 죽순 볶음이었어요. 이 정도면 재료도 간편하니 금방 볶아서 먹어볼 수 있겠어요.


    죽순을 채 썰어 주는데 칼이 들어가는 느낌이 신기하네요. 오독오독 썰리면서 부드럽고 몰랑한 것이 씹는 식감이 독특할 것 같아요. 레시피 영상의 댓글을 보니 죽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식감 때문에 찾는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꺼린다고 하더라고요.


     반 잘라서 속이 비어 있는 대나무처럼 생긴 죽순을 코밑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봅니다. 제 코에는 아무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은데 제가 후각이 둔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냄새에는 예민하지 않아요. 그래서 강한 향신료도 거부감 없이 쓰는데 비해 동생과 아버지는 코가 예민해서 가끔 제가 향신료를 듬뿍 넣어 만드는 요리에 당황하기도 하세요.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자고로 주방에는 칼 든 사람이 대장입니다. 요리하는 사람이 주는 대로 먹어야죠.


    레시피대로 간은 멸치액젓으로 했어요. 그런데 먹어보니 멸치액젓의 냄새가 좀 강한 것 같아요. 죽순 자체에 강한 향이나 맛이 없다 보니 양념의 맛이 강한데 멸치액젓의 양이 좀 과했던 것도 있고 볶아도 남아 있는 비린내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액젓 특유의 감칠맛이 좋지만 죽순을 볶을 때는 깔끔하게 소금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일단 액젓을 쓰기로 했으니 비린내를 잡을 재료로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준비했어요.


    기름에 다진 마늘을 볶다가 채 썬 죽순을 넣어 볶아주세요. 청양고추 1개를 썰어서 넣고 액젓 한 스푼을 넣어서 중불에 볶아줍니다. 죽순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데 저는 볶음 요리에 국물이 흥건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들깻가루 한 스푼 듬뿍 떠서 찹쌀가루 1 티스푼 정도를 섞어서 물에 개어 놓았어요. 소스의 농도를 잡을 때 중식에서는 주로 녹말가루를 쓰는데 감자전분보다는 찹쌀이 더 고소하고 들깨가루와 잘 맞더라고요. 찹쌀가루를 조금 넣어주면 재료에 들깻가루도 더 잘 붙어서 국물이 안 생기고 젓가락으로 쏙쏙 집어먹기에도 좋아요. 들깨가루와 찹쌀가루를 개어 놓은 소스를 붓고 나면 물이 다 증발하도록 센 불에서 볶아줍니다. 마지막으로 통깨와 참기름을 약간 넣었어요. 들기름을 넣었어야 했는데 병뚜껑이 헷갈렸지 뭐예요...

까만 깨보단 흰깨를 뿌렸어야 할까요?


    죽순과의 첫 만남은 나쁘지 않았어요.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이 좋고 죽순 자체에도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많은데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다는 들깨가루와 같이 조리하니 더 건강식인 느낌이에요. 액젓의 향이 강한 건 아쉬웠지만 다음에 할 때는 소금이나 간장으로 대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고소하게 식감을 살리는 건강한 반찬을 만든다면 들깨 죽순 볶음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꼼꼼히 입안에서 죽순을 씹어보고 어떤 맛과 잘 어울릴까 생각해보니 라조장을 넣고 볶은 고추잡채 같은 중식 볶음에 죽순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생강,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양파와 피망, 돼지고기를 넣고 센 불에서 호르르 볶아 굴소스와 라조장을 넣어서 간단하게 만든 고추잡채에 하얀 꽃빵을 감싸서 먹는 거죠. 그럼 아삭하게 씹히는 피망과 죽순이 좋은 식감을 담당하고 중식 소스가 특유의 이국적인 향을 내주면서 돼지고기의 고소한 감칠맛이 잘 어울리는 일품요리가 되겠죠. 내일 저녁 반찬은 죽순 고추잡채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식재료를 만났을 때 머릿속으로 이래저래 아이디어를 내면서 어떤 맛을 더해볼까 상상하는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요리는 제일 쉽게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재료의 맛과 향, 색감과 식감 등의 오감을 자극하는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자유자재로 조합해 그럴듯하게 한 그릇을 만들어내면 즉각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잖아요.


    사람에게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는 순간은 이렇게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만족감이에요.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부드러운 살 비비기, 다정한 말과 아름다운 음악, 향긋한 자연의 냄새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온몸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단순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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