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Apr 27. 2021

우울증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을 의지박약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누군가는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이야기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감기라고 하면 약을 먹으면 7일 만에 나을 것 같고, 약을 안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나을 것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물론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비유한 사람이 가만 둬도 쉽게 나을 병이라고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라고 본다. 아마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은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고, 우울증 환자라고 해도 별나거나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철저히 신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으로 느껴졌다. 그냥 우울한 감정, 감상적인 슬픔이나, 센티멘탈한 멜랑꼴리 같은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증상을 오해한다. 영화나 소설 같은 매체에서 나오는, 창백하고 연약한 사람이 항상 눈물을 흘리며 사소한 일에도 상처 받아 바르르 떠는 듯한 이미지. 그런 우울증에 대한 오해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기분이 항상 가라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함부로 "너 별로 우울증 같지 않은데?"라는 말을 던져 놓는 것이다. 팔에 베인 상처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여줄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아프다는 걸 그 사람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 얄팍하고 무례한 평가를 두고두고 곱씹은 것도 사실이다. 나의 지난 모든 삶의 고통과,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재고 평가하는 말. 공기처럼 가벼운 그 말을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건 순전히 내 복수심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오길, 그래서 그 아이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는 일상의 모든 일이 힘들었다. 우선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 항상 피로하고 몸에 힘이 없었다. 자려고 눕기만 하면 과거의 기억과 부정적인 상념들이 몰려와 배게를 눈물로 적시기 일쑤였다. 그러고 나면 잠이 달아나 새벽까지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뭘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억지로 기운을 내려고 보양식이라도 먹으면 급체해서 며칠을 고생했다. 잠드는 순간까지의 슬픔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어졌다. 비유하면 잠들 때의 기분이 -10이라면 눈뜬 순간부터 -10의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푹 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금세 기분이 좀 나아지는 상황이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정 조절이 안되니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한번 느낀 좌절감에서 쉽게 회복하질 못했다.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워졌고 그 누구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립감에 우울이 더 깊어졌다. 이런 상태니 일이나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설상가상 스트레스가 지속되니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샤워할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칼을 보면서 차라리 머리를 싹 다 밀고 산골짜기 암자의 비구니 승려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상도 싫고 주변 사람들도, 내 머리카락도 날 떠난다. 사람이 떠나는 것보다 머리카락이 떠나는 것이 더 치명적이었다는 건 비밀이다.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치부하면 우울증이 가져오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들을 우울증의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이, 반대로 병든 마음은 신체를 병들게 한다. 내가 느낀 우울증의 신체적 증상은 이렇다.


1. 무기력

 운동이든, 나들이든, 친구들과의 술 모임이든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진다. 푹 쉬고 아무 일도 안 했음에도 팔다리에 힘이 없다. 그냥 몸의 근육에 힘이 안 들어가는 느낌이다. 머리가 빠진 것도 모근의 근육에 힘이 빠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2. 소화불량

 먹고 싶은 것이 없고, 먹으면 족족 체하거나 소화가  되었다. 저 뱃속에 뭘 밀어 넣든 소화기관이 꽉 막혀 멈춘 것 같은 느낌이라 뭘 먹어야 속이 편할까..라는 고민뿐이었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아주 원초적인 만족감 외에 그 어떤 일에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3. 불면증

 단순히 수면의 총량이 줄었다는 것도 있지만 수면의 질이 나빠진다. 피곤해서 누워도 곧바로 잠들 수가 없었고, 잠들어도 2~3시간에 한 번씩 깨곤 했다. 부족한 잠은 낮시간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쪽잠을 자는 것으로 채웠다.


4. 탈모

  샤워를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탈모 샴푸를 쓰기도 하고, 식초 헹굼물로 씻어 보기도 했지만 머리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제일 심했을 때는 머리를 들추면 흰 두피가 고스란히 보이고 조명에 정수리가 훤히 비칠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이 탈모는 우울증 나아지고 스스로 사는 게 괜찮다고 느낄 때쯤 사라졌다.


5. 집중력 감퇴

 원래 책을 끼고 살았던 사람인데도 우울증이 극에 달할 땐 글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한 단어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입으로 소리 내어 읽을 수도 있었지만 무슨 뚯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거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일에도 어색한 괴리감을 느꼈다. 말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간신히 적절한 단어를 배치해서 말하는데도 내 뜻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신체적인 증상뿐만 아니라, 우울증의 원인이 현실적인 문제일 경우 그것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울증의 원인을 잘 살펴보면 하나의 증상이 아래 다양한 원인이 있다. 잘못된 자아상이나 목표의 좌절 때문일 수도 있고, 가정 폭력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일 수도 있다. 가족 간의 불화가 원인이라면 어떻게든 부딪혀 갈등을 해결하거나 따로 떨어져 사는 등의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라면 그저 내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 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 우울증 극복에 복수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기도 하다. 정 안되면 다니는 직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또는 우울증 자체가 병의 전조증상이거나 신체의 기능장애일 수도 있다. 분명한 원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사실 원인 해결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희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예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