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르 웃는 밝은 얼굴.
청춘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젊은 생기. 구김살 없는 천진난만함.
30살이 되니 어린아이들을 보면 "너희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었으나, 그땐 전혀 와 닿지 않던 말이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예쁘다는 그 말은 이목구비가 예쁘고, 연예인처럼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 참 어리고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천진한 웃음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는 말이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를 보면서 나의 엄마는 저렇게 살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시간을 사는 슬픔을 그렸는데, 엄마의 눈에는 내면이 가장 성숙했을 때 가장 젊은 몸을 가지는 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중년이 되어 이제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 때쯤엔 손에 청춘이 없다. 젊은이의 패기가 떠난 자리에 중년의 신중함이 남는다. 모험이 끝난 자리에 안정적인 밥벌이가 남고.
10대에 공부만 하는 건 너무 아깝다. 그 여리디 여린 감수성으로 우정을 쌓고, 세상을 여행하며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할 시간이 부족하다. 나의 10대는 대부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 시간들이고 그나마 함께 독서토론회 하던 친구들과 이런저런 시간을 보낸 일이 전부다. 부모님은 외박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집에 불러 파자마 파티를 하는 건 허락해줬다. 그것도 즐거운 기억이고, 밸런타인데이 전날 친구들과 초콜릿을 만들어 학교에서 나눠 먹은 것도 추억이다.
청춘은 시퍼런 봄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새순의 위대한 생명력이다
힘겹게 피워낸 꽃잎을 바람결에 떨어뜨리는 순진한 어리석음이고,
터져 나오는 탄성과 웃음소리, 태어난 아기의 부드러운 살결, 결혼하는 처녀들의 설렘 같은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생명력. 모든 역경을 뚫고 끝내 싹 틔우고 마는 의지. 청춘이 가진 것들은 그런 것이다.
그 생명력이 가장 강한 10대, 20대에 우리 사회가 너무 큰 짐을 지운다.
땅을 뚫고 솟아난 새싹 위에 돌을 올려 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새싹이 죽어버리거나 비뚤어진 모양으로라도 꾸역꾸역 자라나겠지. 10대에 입시의 무게에 짓눌리고, 20대에 취업의 무게에 짓눌려 본 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게 나만 느낀 슬픔은 아니라고 자신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쫓겨 정신없이 달리다가, 돌아보고 나서
내가 잃은 것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슬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슬픔.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 학원이 엄청나게 많다. 저녁 시간쯤엔 교복을 입고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그 아이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 오지랖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아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지 말자.
인생이 짧고 청춘은 한순간이다. 난 아이들이 그저 넘쳐나는 생기로 즐겁게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