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⑦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
세대 간 소통을 주제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들이 의외로 꼰대라는 말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조언을 줬는데 되려 꼰대라고 거절당하는 것이 마음 아픈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젊은 사람들은 기성세대의 생각에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의 30대는 20대의 생각이 궁금하고, 지금의 20대도 10대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건 인간이 지나간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났으니 상관없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를 궁금해하면서 더 어린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리고 '우리 애들 또래의 요즘애들'이 뭐하는지 궁금한 어른들을 위해서 꼰대라고 상처 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팁들을 생각해봤다.
어떤 경우에서든 나의 의견이 귀하게 여겨지려면 상대가 질문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을 혼자 떠드는 사람에게 TMI, 안물 안궁이라고 하는 것이다.
※TMI(Too Much Information) : 쓸데없이 너무 많은 주는 것
※안물 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 물어보지 않은 말에 너무 많은 말을 할 때 쓰는 말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가 잔소리로 치부되는 핵심적인 이유다. 그러니 평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도 좋다는 오픈된 태도를 가지고 어린 친구들이 찾아오기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다. 귀가 열렸고 보는 눈이 있는 젊은 세대들도 누가 조직에서 실력이 있는지 빠르게 파악한다. 그들이 스스로 귀를 열고 조언을 구하러 오기까지 기다려 주면 좋겠다.
젊은 세대도 질문하고 기성세대도 질문하면 대체 대답은 누가 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소통의 핵심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또 대부분 사회초년생들이 상급자나 어른을 아주 어려워한다. 꼬치꼬치 캐묻거나 먼저 질문을 던져서 어른들과 대화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드문 편이다. 그럼에도 만약 신입사원이나 젊은 사람이 먼저 면담이나 대화를 요청했다면 이 친구들이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할 때
구체적인 문제에 해결책이 필요할 때는 상대가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뭘 몰라서 막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할 때 어떤 개념 자체가 모호하면 응용문제나 풀이법을 배워도 계속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 부하직원이나 젊은 사람의 질문이 모호할 때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막힌 건지 파고들어 가는 역질문이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공감과 격려가 필요할 때
비슷한 상황에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미 회사 내부의 규정이 잡혀있는 경우나 모두가 지키는 규칙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이럴 때는 아무리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있는 규칙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답을 해도 상대는 '까라면 까.'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이 때는 상대방이 조직의 규칙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는 공감과 '시간을 들여서 차차 배워보자.'는 격려가 필요하다.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대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요구에 따른 응답이 나올 때 소통이 쉬워지는 것은 당연하고 피상적이지 않은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늘 지나간 일은 가볍게 생각한다. 40대에게는 20대의 고민이 가볍게 보일 것이나, 고민의 당사자에게는 아주 힘든 일일 수 있다. 가볍게 생각하기 보다 나도 20대에 비슷한 고민을 했고 사회의 시스템에 의문을 가졌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대화를 하면 좋겠다.
의미 있고 현명한 조언을 주었음에도 자녀나 부하직원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가르쳐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실망감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소화하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자.
개인적으로 동생에게 대학 진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동생이 귓등으로도 안 듣길래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내가 다 경험해보고 말해주는 거야!"라고 말했더니 "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라고 받아치더라.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다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배워간다. 실제로 동생은 자기의 방식으로 원하는 대학에 갔다.
누군가의 도움은 이정표지만 결국 선택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가시밭길임을 알아도 가는 사람은 어쩌면 남들이 실패하는 곳에서 성공할 운명을 가진지도 모른다. 특히 자녀의 진로문제에 대해서 아이가 강한 자기 확신이 있다면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게 아이와 관계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만약 그 아이가 실패하더라도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실패의 상처를 밖에서 채우려고 하면 더 큰 상처를 받기 쉬우니 힘들 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자녀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굉장히 핵심적인 문제 하나는 기성세대가 어른에게 기대하는 멘토나 롤모델의 되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젊은 사람들의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것에도 아는 척 대답을 하려고 하거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질문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면, 소위 말하는 '꼰대 아닌 척하는 꼰대'가 될 뿐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하거나 "네가 찾는 답은 나에게 없다."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편하게 대화하다 보면 서로 이해할 수 있고 다른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 못하는 사람이 꼰대의 기준이지 않나. 윤여정이 멋있게 보이는 것은 나도 모른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나누지 않고, 늘 새로운 오늘을 사는 인간으로 보기 시작할 때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처음 글을 쓸 때 메인의 사진을 뭘로 고를지 고민을 많이 했다. 세대 간 소통이라는 주제만 생각한다면 왼쪽 사진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른쪽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나이 차가 30년이든 50년이든 우리의 눈에는 간극이 엄청 깊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덧없이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을 배우고 떠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눈앞의 깊은 간극도 멀리서 보면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너무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지금은 20대 30대보다 아주 조금 먼저 세상을 배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이들도 곧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세대 간 소통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었고, 나의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었다.
소통의 시작은 서로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고, 소통의 목적은 공통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고유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가 같은 방향성(목적)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