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하게 타락하는 이들.

중년 남성들과 룸싸롱과 술집여자의 상관관계

by 구름조각

아버지는 중국 지사에서 4년간 근무하셨다. 그때 옌타이에는 한국 소재의 기업들이 많아서 간판에도 쉽게 한국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살던 아파트 상가에는 한국어에 능숙한 중국인 직원들이 있었다. 4년이나 살았는데도 아버지 중국어 실력이 고만고만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종종 한국에 올 때면 본사에 보고할 일이 있거나 거래처 방문을 목적으로 오셨다. 거기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들을 만나 술자리도 갖고 회포도 풀어야 하니 가희 연예인 스케쥴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러니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면 우리 가족이 중국에 건너가는 편이 나았다.


그때 가족들이 중국 여행을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다. 베이징이나 청도도 가고 옌타이 주변의 맛집이나 바다에도 자주 놀러갔다. 논다고는 하지만 물놀이 취향이 없었던 탓에 그저 파도소리나 듣고 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간만에 만난 아버지와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무심하던 아버지도 떨어져 있는 동안 그리움이 큰 모양인지 예전보다 훨씬 살갑게 대해줬다.


대학의 긴 방학에 중국에 넘어가 2~3주 쯤 머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엄마는 중국에 갈 때마다 한국 음식과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간 김치며 반찬을 바리바리 포장해 가셨다. 어머니는 손맛이 좋은 편이었고 아버지는 비위가 약해 늘 먹던 한국음식만 그리워 하시니 두 분에게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 반찬과 김치 같은 것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어머니는 말도 안 통하는 중국 시장에서 장을 봐다가 한상 가득 상차림을 해서 아버지를 먹였다. "이런 걸 뭐하러 하냐"고 퉁명하게 답하시면서도 두공기씩 비워내는 게 무심한 아버지의 애정 표현이었고, "그냥 노니까 심심해서 했어"라고 무심하게 답하시는 게 어머니의 애정표현이었다.


한 해는 어머니를 빼고 나와 동생만 옌타이에 방문했다. 오로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러간다는 목적으로 비행기를 탄 것이라, 공항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목적이 달성된 여행이었다. 동생과 나는 둘 다 활동적이지 않고 책이나 읽어대는 책벌레라 중국 어디 어디를 다녀보겠다는 계획도 없이 책만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휑한 집에서 나와 동생은 한가롭게 책이나 보고 있다가 아버지 퇴근 시간에 만나 외식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것이다. 나와 동생에게는 실로 만족스러운 휴가였지만 아버지는 집에 둔 아이들이 영 신경쓰이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중국까지 왔으니 어디라도 가야하지 않냐"고 보채시는 통에 혼자서 옌타이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객기도 부려보았다. 그러나 온통 회색 콘크리트가 덮여 잘 개발된 중국 옌타이의 풍경은 한국 대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되려 스케일만 커서 지루하게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광장따위에는 영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드리려 혼자 광장, 바다, 시장, 번화가를 잘 쏘다니고 그날 저녁에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아버지 없는 동안 충실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고 최대한 각색해서.


사건이 일어난 그날, 오전에는 혼자서 옌타이에서 제일 큰 아파트 주변의 번화가를 구경하고 왔다. 그 아파트에는 한국 주재원 가족들이 많았던 모양인지 빵집 유리에 한국어로 '과외구함' 전단지도 붙어있었다.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은 바다 건너서도 식지 않는다고 흥미롭게 전단을 읽고 있었다. 사실 그간 한국의 교육열을 생각하면 상당히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상황이라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저녁에 아버지가 데려간 간장게장집에서 그런 소소한 일들을 한껏 양념을 쳐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 아버지의 지인들이 오셨는데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사장님들의 모임이었다. 아버지도 종종 골프를 함께 치면서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 같다. 한국에서 딸과 아들이 왔다고 하니 제 자식처럼 반겨주셔서 감사하기도 했다. 식사가 거의 비슷하게 끝나고 그분들은 여기서 만난 것도 반가운데 망고빙수라도 사주겠다며 차에 타라고 성화셨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망고빙수를 사주려고 성화인게 썩 유쾌해서 같이 차에 타고 가는 중이었다.


"아니 근데 아버지 만나러 중국까지 왔는데 게장이나 먹어서 되냐? 어디 좋은 데 가서 비싼 음식 사달라고 하지!"

"아, 아니예요. 중국 올 때마다 맛있는 거 많이 먹었고 중국식 게장도 특이해서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도 말이지. 나는 우리 아들 왔을 때 최고 비싼 룸싸롱가서 여기서 제일 예쁜 아가씨 쭉 데려와 보라고 했는데! 너네는 술 안먹어?"

???


'예? 룸싸롱이요? 제일 예쁜 아가씨요?'


혼란스러움에 말을 잃은 동안 아버지는 과장되게 웃으면 "아이고, 사장님 쿨하십니다!"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 망고빙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과 나만 먼저 집으로 들어가면서 "오늘 들은 건 모른 척 하자."고 공모했다. 우리가 모른 척 한 것이 룸싸롱 이야기였는지, 아버지의 비굴이었는지, 그 어색한 분위기였는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아빠한테 맛있는거 사달라고 하렴" 정도의 말투로 룸싸롱과 술집 아가씨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참 당혹스러웠다. 더군다나 그런 것을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려줬다는 내용도.


그의 아들은 중국에서 아버지의 성공에 따른 보상으로 룸싸롱과 술집 아가씨의 아양을 얻는다고 체득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으스대면서 술집 마담에게 "여기서 제일 예쁜 아가씨로 데려와 봐!" 라고 하면 마담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 어리고 갸냘픈 여자애들을 아들 옆에 앉혀놓았겠지. 거기다 비싼 술과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안주를 쌓아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동경하며 그 술을 받아마시고 아버지처럼 성공하겠다며 다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자간의 끈끈한 정은 룸싸롱에서 깊어졌을 것이다. 아들이 한국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좋은 시간 보냈니?"라고 물었을 것이고, 아들은 "아버지와 좋은 시간 보냈어요. 나도 아빠처럼 성공하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웅변대회 나온 꼬맹이처럼 또랑또랑하게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이 또 기특하여 "저녁에 엄마가 맛있는거 해줄까?"라며 엉덩이를 토닥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풍경을 상상하다 울컥 토악질이 나왔다.


"더러워..."


도대체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말로 하지 않고 몸소 보여준 성공의 대가라는 것이 그런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놀 수 있다는 거였나. 그 아들이 무신경하게 받아들였대도 문제이지만 만약 남다른 도덕심이라도 있어서 아버지에게 실망하여 신뢰가 깨졌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그 사장님의 목소리에 묻어나온 아들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참으로 진실되어 아들이 더욱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가능성있는 가설이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아들에게 알려주는 룸싸롱의 세계라면, 그 아버지도 살면서 단 한번도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유추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인의 딸이 있는 자리에서도 뱉어낼 정도라면 그 룸싸롱 이야기가 일상생활과 다름 없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날은 새벽까지 뒤척였다. 그리고 가장 아팠던 것은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끝에 나의 아버지가 걸려나올 때였다. 15살, 아버지의 자켓 주머니에서 발견한 라이터에 적혀져 있던 술집 상호명과 전화번호. 나는 행여 엄마가 보고 상처입을까 싶어 허둥지둥 감추었다. 그럼에도 진실이 궁금하여 입이 근질근질했던 모양이었는지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넌지시 물어봤다.


"아빠는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본 적 있어?"

"그건 왜 물어봐?"

"아니 그냥..."


지금 떠올리면 유도심문따위 할 생각 못하고 돌직구로 던진 것도 우습기만 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왜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나는 그 어색한 침묵을 묻어두기로 했던 것이다. 늘 진실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진실을 직면하는 것에는 주저하게 된다. 두려워진다.


이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위기였을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오뎅바에서 소주를 마셨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빠는 너와 너희 엄마한테 부끄러운 짓 한번도 한적 없다."라며 괴로워 하셨다. 그 괴로움에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운 짓'의 범주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용납못할 짓이 누군가에게는 떳떳한 일일 수도 있으니. 어떻게 가정을 두고 술집여자와 놀아날 수 있냐고 울부짖는 아내과 남자가 사회생활하다보면 그럴 수 있지! 라는 클리셰야 뻔하지 않은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해도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나만 고고히 깨끗하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동안, 피와 먼지를 뒤집어 썻을 것이다. 몸에 튄 핏물에는 적군의 피뿐만 아니라 아군의 피도 묻었을 것이다. 이미 쓰러진 전우의 시체를 밟고 뛰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으려 무자비하게 목숨을 빼앗고 손에 날카로운 무기를 뒤집어썼을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 남는 하루하루의 끝에는 양심의 가책에 발버둥칠 수도 있다. 전쟁을 하면 선전물에 무조건 적들은 악마와 다름없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들도 살아 숨쉬는 평범한 인간임을 자각하면 인간을 죽이는 양심의 가책이 너무 크니까. 나의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그들을 타자화하고 악마화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선량한 영혼, 양심의 소리를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가엾다. 그저 가여울 뿐이다.


아버지와 나는 항상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싸우고, 가끔 화해한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그가 가엾다. 이건 딸이 아버지에게 가지는 부채감이나 죄책감과는 다른, 인간으로서의 연민같은 감정이다. 아버지는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가 무력하게 타락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럼에도 점점 물들어 갈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해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진출처 Queen_hee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queen_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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