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 아이의 일기
사람의 목숨이란 신기루처럼 덧없다. 어제까지 점심에 뭘 먹을지 함께 고민하고 같이 일을 하던 동료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다. 대단한 사고도 아니고 그저 잠자리에 누웠는데 다음날 일어나지 못했단다. 전날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내일 일찍 나가야 되니까, 아침에 깨워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심장이 멈춘 딸아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침에 딸을 깨우러 온 어머니였겠지. 회사에서는 혹시 회사의 업무가 과도해 과로로 사망한 건 아닌지 내부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평소 지병도 없이 건강하던 20대 여성이 잠들었다가 죽었다고 하면 어떻게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게 딸을 잃고 황망한 부모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는 일이다.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에서 반듯하게 앉아 있던 동료의 얼굴을 보았다. 아마 저 증명사진은 취업준비를 하며 자기소개서에 붙일 용도로 찍었을 것이다. 말끔한 얼굴의 생기넘치는 젊은 여자가 영정사진에 있고 그 옆에 딸을 잃고 망연히 앉은 중년여성이 있는 풍경이 낯설었다. 죽은 동료의 어머니는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닌 듯 잿빛의 생기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사람의 목숨이 연약하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그리고 나도 사람이니, 나의 죽음도 저렇게 소리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문득 나의 죽음이 의식된다. 늘 잊고 살았지만 사람은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손을 가슴 어귀에 대어 봤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느껴졌지만 갑자기 내가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동료의 죽음을 생각하게 될 까봐 서둘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떠들썩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소한 일에 배꼽이 빠져라 웃어야 한다. 그래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만나서 아늑한 이자까야에서 만났다.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친구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대부분은 바보 같았던 어린 시절의 실수담과 서로를 놀리는 농담들이다. 실컷 웃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스윽 닦다가 장례식장에서 딸의 영정사진을 망연히 보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웃음소리가 멀게 들리고 술집의 풍경이 흐려진다. 나도 모르게 직장의 동료가 죽었다는 말을 꺼냈다. 실컷 웃던 친구들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죽음은 이렇게 산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저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잠을 자다가 죽었다고, 전날까지 나와 함께 근무했는데 그렇게 황당하게 숨이 멎었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서둘러 나를 위로하려고 말을 더한다.
"너는 괜찮아?"
"응, 나 괜찮아."
"그래도 계속 생각나지 않아?"
"내가 안 괜찮을게 뭐가 있겠어. 그냥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떠나서 좀 놀랐어."
어색해진 분위기가 싫어서 먼저 말을 돌렸다. 친구들은 내 얼굴을 몇 번 더 유심히 보다가 함께 다른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그래. 이렇게 웃고 넘어가는 게 좋은 거야.' 소주를 한잔 더 들이키며 크게 한번 웃었다.
모두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마음이 헛헛했다. 안주를 잔뜩 먹고 술도 평소보다 많이 마셨는데 속이 텅 빈 것 같아서 자꾸 뭘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은, 지금 이 기분으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뭔가 터져 나올 것 같다. 억지로 눌러놓아도 엄마는 금세 내 목소리에서 뭔가를 읽어내겠지. 엄마에게 전화하는 대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이나 만난 남자 친구, 엄마 다음으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남자 친구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니 일렁이던 마음이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다.
"술 많이 마셨어?"
"응, 응, 오늘 기분 좋아서 많이 마셨어."
"으이그... 얼른 집에 들어가."
"응, 집에 다 와가."
"집 들어가서 씻고 전화할까?"
"응, 응, 그래, 그래."
어른이 돼서 연애를 하면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릴 수 있어서 좋다. 이제 엄마 앞에서도 못하는 애기 짓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놓고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는 다정한 목소리도 듣기 좋다. 이렇게 지내다가 우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아이들을 잘 키워서 대학 보내면, 우리 둘이 하얀 머리로 늙어가서... 생각은 거기서 멈추고 샤워기를 들어 찬물로 머리를 적셨다. 피부의 감각들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빳빳한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남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피곤해서 먼저 잘게.' 답장이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핸드폰을 켜보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 혼자 지내는 자취방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느릿느릿 머리를 말리는 동안 헤어드라이기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천장이 이렇게 낮았나? 평소보다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서 답답해졌다. 아까 먹은 튀김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서 배를 몇 번 쓸어보았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뭘 채워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뭘 비워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여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계속 침대에서 뒤척이다 주섬주섬 일어나 냄비에 물을 올렸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어야지. 새벽에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으니까. 그리고 뜨거운 국물을 조금 먹으면 속이 진정될 것 같기도 하다. 물을 팔팔 끓으면 수프를 넣고 면을 넣고, 빨리 익으라고 뒤적여 준다. 파도 가위로 잘라서 넣고, 계란도 하나 까 넣을까 싶다가 왠지 새벽에 너무 거하게 먹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초록 파를 잔뜩 넣으면 왠지 건강한 라면이 될 것 같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끓여먹는 라면은 참 맛있다. 타이밍도 딱 맞아서 면도 적당히 꼬들하고 탱글 해서 맛이 좋다. 면 한입, 국물 한입. 조용한 자취방에 진한 라면 냄새와 후루룩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울렸다. 혀는 너무 맛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몇번 먹지 않고도 젓가락을 내려놓게 되었다. 속에서 받아주지 않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다. 고등학생 때는 늦게까지 공부하고 새벽에 먹는 라면이 참 맛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면 바로 속에서 음식을 받아주지 않는다.
적막한 집이 싫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뭐라도 좋으니 웃음소리로 이 고요를 채워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웃음소리와 현란한 화면 중간중간 검은 화면에 무표정한 내 얼굴이 반사되었다. 눈이 뻑뻑한데도 자꾸 다음 영상, 다음 영상을 찾는다. 영화 리뷰, 화장하는 뷰티 유투버의 제품 소개, 스트레스 지수를 줄이는 명상법, 조용한 음악, 아이돌 가수 춤 선 비교, 2030 재테크 비법... 맥락 없이 의미 없이 영상만 계속 이어진다. 귀가 아프다고 느낄 쯤에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과열되어 손에 땀이 났다. 그 사이 절반 이상 남은 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보고 있으니 속이 메슥거려서 냄비째로 설거지통에 부어버렸다.
어느새 새벽이 푸르게 밝아오고 있었다. 자취방이 파랗게 물들어 간다. 두꺼운 커튼을 걷고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두운 하늘이 점차 푸르게 밝아오면서 붉은 태양이 조금씩 머리를 내민다. 그 빛이 점점 밝아져 눈살을 찌푸리게 될 때까지 태양을 보고 있었다. 밝아지면서 점점 선이 또렷해지는 내 손과 팔을 보았다. 어둠이 걷힐수록 나의 존재는 또렷해진다. 허파 깊숙이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면서 잔뜩 부푼 허파가 안쪽에서 갈비뼈를 밀어내는 것을 느낀다. 숨소리가 귀에 들리자 그제야 안심이 된다. 살아있다.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에서 반듯하게 앉아 있던 동료의 얼굴을 보았다. 아마 취업용으로 찍은 증명사진이었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