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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06. 2021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의 문제

너무 많이 사랑을 퍼부으면 질식하고, 너무 뜨겁게 사랑하면 화상을 입는다

    퍼내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 샘물 같고 밟아도 밟아도 꺼지지 않는 불꽃같다. 내 사랑은. 너무 깊고 뜨겁고 용광로처럼 부글대는 사랑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걸 태워버린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기꺼이 사랑의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난 아니다.


    난 그렇게 사랑에 목매고 앞뒤 없이 모든 걸 던지고 나 자신을 활활 불태우고 싶지 않단 말이다. 나는 조금 덜 사랑하고 싶고, 한 발은 빼놓고 싶고, 반쪽짜리 가슴으로만 사랑하고 싶다. 너무 깊이 사랑에 빠져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파르라니 질린 입술로 사랑을 구걸하는 건 너무 비참하지 않나. 난 너무 뜨겁게 사랑하려 데인 흉터를 본다.


    전갈자리의 신화를 들었다. 전갈이 자기를 향한 꼬리 끝의 독을 가진 것처럼, 전갈자리의 사람들은 내면의 독으로 스스로를 죽이는 숙명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몇 번의 인생 후에 찾아오는 카르마를 전갈자리는 이번 생애 사는 동안 마주한다. 지독하게 달려드는 카르마에 붙잡혀 기어코 끝을 보고야 만다. 그러나 전갈자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스스로를 찔러 갈라진 등껍질 사이에서 하얀 독수리가 태어나 태양으로 날아오른다. 타오른 재에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전갈자리에게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다.


    이 이야기는 전갈자리의 인생과 사랑을 설명하는 낭만적인 우화다. 모든 것을 걸어 사랑하고 결국 그 사랑이 자신을 죽일지라도 거기서 새 생명을 얻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All or Nothing 두가지의 선택지 뿐이다. 그렇지만 난 사자자리 여자란 말이다. 왜 전갈자리의 스토리가 내 마음을 잡아챈 건지 모르겠다.


    그저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깊은 심연 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싶다. 너무 많이 사랑하는 내가 잘못된 건 아니라고 모든 고통 속에서 나도 하얀 독수리가 되어 태양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믿음은 배신당하고, 퍼부은 감정은 다 재로 변했지만 그 안에서 뭔가가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어떤 영감이든, 예술혼이든, 깨달음이든. 내가 그를 사랑했던 시간이 그저 다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설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전문가들은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은 자존감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자존감.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깊이 사랑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사랑이 말랑하고 상냥한 감정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랑한 감정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고, 상냥한 마음은 서로 따뜻하게만 보듬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본 사랑은 서로 죽도록 싸워대면서도 놓지 못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며, 서로 같은 곳을 보며 께 걸어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자기가 가는 길로 가야 한다고 다투는 관계다. 내 부모님이 그런 애증의 관계를 30년 넘게 지속 중이다.


    연애는 두 사람이 시작하지만 내 감정은 나만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 감정에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사람의 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날 사랑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모든 연애는 일종의 자위행위 같은 관계다. 두 사람이 하는 연애는 한 사람의 감정이 식으면 끝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늘 한쪽이 아쉬운 채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 모든 일이 헛된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나 자신을 설득할 것인가? 이 사랑에 대한 냉소를 어떻게 버릴 수 있다는 것인가? 사랑에 빠져 들뜬 마음도 더 이상 내 눈을 가릴 수가 없었다. 30대에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감정이 이성을 가릴 수 없고, 현실을 잊고 이상을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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