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음식을 만드는가?
물론 즐거움 뒤에는 냉정한 현실이 있습니다. 기네스 와퍼가 8500원이고 기네스 맥주가 4400원이라 한 끼에 12900원을 지출했습니다. 거의 13000원 값이면 훨씬 더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도 있는 돈이잖아요. 자극적인 햄버거에 쌉쌀한 흑맥주가 주는 짧은 만족감 뒤에는 아쉬움과 후회만 남습니다.
이럴 거면 집에서 밥 해 먹을걸...
혼자 햄버거를 먹다가 제가 '왜 직접 만드는 음식을 선호하는지' 생각해 봤어요. 남들은 어떻게든 배달이나 사 먹는 요리로 간단하게 해결하려고 난리인데, 왜 굳이 일을 만들어서 하는지 고민했어요. 거기에는 완성한 요리로 맛보는 즉각적인 성취감과 만족감뿐만 아니라 저의 까다로운 성질머리도 한 몫합니다. 조리도구를 깨끗하게 관리하는지, 재료는 신선한 것으로 사용하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조건들을 따지는 편입니다. 식당에 가면 오픈 키친인지, 잘 관리되는 주방인지 확인하고 싶어요.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그런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배달을 잘 시켜먹지 않게 되죠.
또 하나 까다롭게 따지는 것은 식사를 하는 환경입니다. 조용하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 먹는 게 좋거든요. 예전에 한번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명동에서 닭칼국수를 먹었던 적이 있어요. 일단 대구광역시 출신인 저에게 고작 칼국수 한 그릇을 먹는데 웨이팅을 30분씩 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일단 자리가 나면 모르는 사람과 앉아서 어색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가게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바로 옆에 있는 친구의 말소리도 안 들린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이 시골쥐가 서울 구경을 가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날 먹은 닭칼국수의 맛은 기억도 안 날뿐더러 소화가 안돼서 하루 종일 더부룩했던 기억만 남았네요. 그 후로 아무리 맛집이라고 소문나도 길게 줄 서서 기다리거나 북적이는 가게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시장바닥 같은 곳에서 한 끼를 해치우고 싶지는 않거든요.
마지막으로 저의 푸드에세이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꽤나 건강을 신경 쓰는 사람이거든요. 한때 늘 위장장애와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던 사람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먹느냐'는 생존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단순한 만족감이나 삶의 질을 상승시키려는 사치가 아닌 거죠. 잘못된 음식을 제대로 조리하지 않고 불편한 상황에서 먹는다면 바로 몸이 아프고 탈이 납니다. 예민하고 연약한 몸을 가진 탓에 청결, 환경, 건강 등의 관점에서 남들보다 까다롭게 음식을 고르는 거죠. 그렇다 보니 제 기준에 만족할 만한 식당을 찾기보다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말지...'라고 생각하게 되네요.
일탈은 돌아올 곳이 있어서 짜릿하다죠? 잠깐의 소소한 일탈로 햄버거에 흑맥주 한 캔 마셨지만 다시 건강한 음식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매번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나 자신을 위한 의식(ritual)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추얼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분들에게 설명드리자면, 자신을 위해 특정한 의식과 의례를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트렌드인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습관 만들기'가 '리추얼 라이프'에 해당하죠. 정리하자면 리추얼(ritual)은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이나 '사소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의식'인 셈입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이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거나 어학 공부를 하는 것도 '리추얼'이 될 수 있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지친 주부가 혼자만의 시간을 정해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는 짤막한 글을 쓰는 것도 '리추얼'이 될 수 있고,
저처럼 불안한 마음과 연약한 몸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돌보기 위한 음식과 깨끗한 환경을 정돈하는 것도 '리추얼'이 될 수 있겠죠.
여러분만의 리추얼을 정한 후 자기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저는 매일같이 쓰는 브런치의 글에서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꿈과 삶의 방향들을 재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 였구요. 그렇게 리추얼을 만들고 나만의 행복한 일상이 있어야 가끔의 일탈을 즐길 수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