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냥이 집사 구하기 Project 07.
고양이들이 태어난 후 2개월까지는 사회성이 발달하는 기간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먹은 사료나 간식으로 평생의 입맛이 결정되기도 하고, 사람과의 친화성도 이때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애착을 형성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관계나 가정 내에서 비슷한 애착 유형을 보이는 것과 같다. 동물과 가까이 지낼수록 인간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일개 포유동물의 한 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말 못 하는 동물들과 인간이란 종의 행태는 많이 닮아있다. 인간들이 똑똑한척 하지만 사실 인류사의 대부분은 정말로 천재적인 몇 명에 의해 발전되었고 나머지들은 주입받은 지식을 소화해 내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인간이 일반적인 포유동물과 다른 점은 언어로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그 정보들을 기록으로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멍청한 인간들도 말과 글로 똑똑한 사람들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받아 유식한 척 꾸며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남의 말을 배워서 전하기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꼬마와 까미는 생후 4주째가 되었고 한창 사회성이 자라고 있는 시점이다. 이 고양이 형제들은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경쟁하듯 캣타워에 오른다. 까미가 묘하게 좀 더 힘이 좋고 적극적인 성격이고 꼬미는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이 아이들은 혼자 돌아다니는 로봇 청소기가 신기한지 위에 올라타서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구석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소파 틈새에 머리를 들이민다. 이런 놀이 같은 활동으로 다른 고양이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틈틈이 위층 식구들에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으면서는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런 긍정적인 환경은 후에 꼬마와 까미가 다른 집에 입양 갔을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집고양이 진숙이는 생후 2달째 되는 시점에 발견이 되어서 이미 사회성 발달 기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만난 나와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고 경계한다. 특히 사촌 동생들이 잘 모르고 진숙이를 억지로 안으려고 했는데, 자기들 딴엔 진숙이가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겠지만 진숙이 입장에서는 끔찍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사촌동생들이 집에 오면 현관문을 열 때부터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침대 밑으로 숨어 버린다. 어린 시절 경험이 평생을 결정한다는 걸 고양이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다.
나는 늘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포유동물의 육체를 가지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신체는 연약하고 하루 중 3분의 1은 수면을 취해야 하고 쉽게 다치고 고장 나고 정기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섭취하는 음식물은 신체라는 복잡한 기계를 움직이는 연료에 그치지 않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만족감과 연결된다. 그 덕에 인간은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쳐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먹는 것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거기다 인간은 단순히 종족 번식의 목적으로 성관계하는 게 아니라 쾌락의 추구나 관계의 결속력을 확인하는 용도로 접근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사랑이라는 명확하지 않은 감정을 성관계와 뒤섞어 사랑과 섹스 사이에서 복잡한 갈등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삶은 단순하지만 그 삶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규칙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회는 문명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어렸을 때부터 도덕으로 가르치고 포유동물로서의 욕구를 통제하게 만든다. 보통 이런 억압된 욕구들이 내면의 갈등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니, 포유동물로 태어나 포유동물의 기본적인 욕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죽은 인간이 많은 것이다. 건강하게 먹고 자고, 다른 인간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고, 번식하여 자손을 남기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조차 사치가 된 사회가 되어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이 내가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내 집 마련은 까마득하기만 하고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쉽지 않으며 미래가 없는 삶에 자식을 낳을 생각도 포기해 버렸다. 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자꾸만 단절되어 결국에는 동물에게 친밀감을 기대는 건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반려동물을 곁에 두면서 지속적으로 나의 가치를 확인받고 친밀감의 욕구를 채우려는 것이다.
고양이 형제들을 보면서 별소리를 다 한다 싶지만, 꼬마와 까미가 곧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렇다. 입양 글을 올린 직후 꼬미는 새로운 집사와 연이 닿아서 충남 서산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사이 까미는 경남 진주시에서 임시보호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 집으로 갈 예정이다. 위층에서 꼬마와 까미가 온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동안 원래 그 집의 주인이던 치즈 냥이는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었다. 새끼 고양이가 다칠까 봐 잠깐 격리해놓는다는 것이 집주인 고양이를 일주일이나 베란다에 쫓아낸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주인 치즈냥이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처음 보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나서 집사들과 자신의 캣타워를 빼앗은 격이니 몹시 못마땅할 것이다. 이제 까미와 꼬미 형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아마 이번에 헤어지면 살아있는 동안 이 두 형제가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의좋은 형제를 갈라놓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만 꼬마와 까미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해맑고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