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에서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날 우연히 7화의 산악구보 장면을 보고, 다친 어깨를 부여잡은 이정민 대원과 동료의 군장까지 총 80kg을 짊어지고 가는 김민수 대원을 보고 소위 말하는 '입덕'을 했다. 그러고는 1화부터 정주행까지 한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난 이렇게 뭔가에 홀리듯이 입덕 하거나 하는 타입이 아니다. 중,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가수가 있어도 그저 무대 영상을 보거나 가끔 CD를 사는 것이 전부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강철부대>만큼은 진심이었다. 서바이벌은 많았지만 <프로듀스 101>에는 비빌 수도 없는 치열한 생존 서바이벌에 군인 정신이라니, 이건 마라탕 같은 중독성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렇게 <강철부대>에 빠져서 보는 동안, 뭔가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무리한 체력전에도 포기하지 않고, 손톱이 빠질 듯 타이어를 굴리거나, 동료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부상을 숨기는 대원들의 모습을 "진정한 남자다." "저게 군인 정신이다."라고 치켜세우는 모습들이. 자꾸 뭔가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영화 <매드 맥스>의 리뷰 영상 썸네일을 보고 깨달았다. 난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에서 <매드 맥스> 속 워보이들을 사막으로 내모는 광기를 느끼고 있었다.
발할라의 워보이
영화 <매드 맥스>에서 워보이는 전쟁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죽는 것이 목표다.
그들은 권력자에게 인정받아 죽음 후에 발할라에 가는 영광을 꿈꾼다.
이 발할라의 모티브는 북유럽 신화에서 왔는데, 용감한 전사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으면 발키리에 의해 선택받아 발할라에서 최후의 결전 라그나로크를 준비한다는 신화이다. 여기서 척박한 환경에서 바이킹으로 살았던 북유럽인들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북유럽인들에게 전쟁이란 승패의 결과와 관계없이 최강의 전사를 가리는 경기 같은 것이었다. 전사들의 신인 오딘이 가장 강한 자를 가려내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진정한 영광은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이 아닌 장렬히 죽음으로써 오딘에게 진정한 전사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겪은 북유럽인 들은 세상의 종말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라그나로크는 최후의 결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길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이런 비장한 분위기가 그리스 로마 신들 특유의 느긋하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즐기는 듯한 태도와는 다른 매력을 준다. 북유럽 인들에게 신이란 나와 함께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을 전우 같은 느낌이다.
<매드 맥스>의 워보이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절대자를 위해 영광스럽게 죽는 걸 선택한다. 죽기 직전에 치아에 크롬을 뿌리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죽음을 기억해달라는 단말마를 외친다. 그리고 동료들은 기꺼이 진정한 전사로 죽은 동료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한다. 권력자 임모탄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워보이의 치아에 크롬을 뿌려주며 "넌 영원히 크롬처럼 빛날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는데, 여기에 희열을 느끼는 워보이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는 발할라 행 급행열차를 탈 수 있는 크롬 티켓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위대한 영광, 영생, 넘쳐나는 젖과 꿀, 진정한 전사의 명예 같은 단어들은 십자군 종교전쟁에서도,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쟁 등 인류사의 모든 전쟁들과 현대 사회에 자행되는 끔찍한 테러에서도 들려오는 말들이다. 젊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 몰려면 그런 거짓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거짓말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늘 교활한 늙은이들이다.
우리의 아들들, 형제들을 보는 마음
<강철부대>에서 나오는 '저게 남자지!' 이런 말들은 정말 강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본능적인 동경심을 넘어서, '남자는 마땅히~해야 한다'는 이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 마땅히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고, 견디고,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강해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 이제 더 이상 죽음 뒤의 천국을 약속하는 것으론 설득할 수 없으니 저런 이미지로 세뇌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2차 대전 때 미국 청년들의 참전율을 높인 포스터처럼. 잘 만든 이미지는 장황한 설교보다 강한 법이니까.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포스터
나는 내 남동생, 친구, 아버지, 삼촌들을 보는 마음으로 남성들이 맹목적인 충성심이나 강한 남자의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좋겠다. 남동생이 군대에 갈 때도 신신당부했다. "무조건 네 몸을 아끼렴." 괜히 허세 부리다가 네 몸이 상하면 국가는 널 모른 척할 테니.
20대 남성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겼으면, 당연히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슷하게 우리 사회에서도 부조리를 버티는 것이, 무리한 일을 떠맡는 것이 남자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의 평화와 풍요는 누릴 수 없게 되는 건가. 그러나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지탱되는 공동체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나마 <강철부대>가 여러 세대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리한 애국심을 끼워 넣기보다 전우애를 강조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어깨를 맞댄 전우와 고향 땅의 가족들을 지키자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법이다. 그래도 언제나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해주면 좋겠다. 고향 땅의 가족들은 자신의 형제이자, 아들이자,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 돌아오는 것을 가장 바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