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Feb 05. 2022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해...

영화 <her>로 보는 '나'와 '타자'의 사랑

피그말리온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여자 조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랑에 빠졌다. 그의 사랑에 감복한 아프로디테가 생명을 불어넣어 조각이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실제 이야기는 그리스의 한 청년이 조각상을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망상증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처럼 조각을 아내 삼아 옷을 입히고 결혼식을 진행했을지도 모른다. 실제가 어떻게 되었든 신의 개입으로 로맨틱한 사랑이야기가 된 피그말리온 신화였다. 과거에는 신의 손길이 필요했으나 이제는 과학 기술로 신화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그녀(Her)>의 줄거리

    영화 <그녀(Her)>는 가까운 미래인 2025년, 고도의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연애편지 대필작가로 일하는 주인공 테오도르는 사랑에 실패하고 외로움에 지쳐 인공지능과의 대화로 외로움을 해소하려 한다. 자신을 사만다라고 소개한 OS는 이메일 정리부터 테오도르의 외로움을 위로를 하기까지 일상 곳곳에 스며들며 그의 일부가 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소개팅을 주선하지만 테오도르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대신 사만다와는 성적 교감도 나누고 함께 여행도 하며 관계를 확신하고 전처와 관계를 정리하러 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위해 만난다. 그러나 전처는 테오도르가 OS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진짜 감정을 다룰 줄 못한다'라고 비난한다.


    특유의 영상미와 호아킨 피닉스의 섬세한 감정 연기만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실체가 없는 OS를 사랑하고 진짜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현대인들의 공허한 관계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인간과 인간이 사랑, 인간과 OS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관계'에 대한 고민을 관객과 나눈다. 영화가 제시하는 정답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각자의 답을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사랑의 형태에 관해 상상해봤다.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일

    당신의 아내가 Ai 남자 친구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당신의 남편이 Ai 여자 친구를 만들었다고 상상해보자. 배우자가 Ai와 데이트도 하고 섹스도 하지만 사람이 아니니 바람은 아닌 셈이 되는 것일까? 그저 배우자가 조금 더 아끼는 가방이나 인형쯤으로 생각하고 이해해줄 것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감정마저 정보화해서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ai와 바람난 배우자를 유책배우자가 되는지에 대한 법정공방이 일어날 것 같다.


    싱글들은 또 어떨까? 자신의 이상형에 꼭 맞춘 외모와 성격으로 세팅한 ai를 애인으로 삼는다면? 그는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애인이 될 것이다. 그럼 '진짜' 사람과 싸워가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ai를 사랑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등장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 모두가 자기의 취향대로 만든 조각상인 갈라테이아와 결혼한 피그말리온이 될 수 있다.


진짜 사람, 진짜 사랑

    영화 <그녀>는 의외의 결말을 제시하는데 고도로 발달된 OS가 마침내 자아를 찾게 되어 테오도르를 떠난다는 설정이다. 피그말리온 신화에 빗대자면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으로 조각상에서 사람으로 변했지만, 정작 사람이 된 갈라테아는 피그말리온을 사랑하지 않는 셈이다. 더 이상 인형이 아닌, 자아를 가진 존재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다.


    나에게 꼭 맞춘 인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죽어버릴 강아지 대신 로봇 강아지, 언젠가 나를 떠나버릴 사람 대신 AI 인형을 선택한다. 그들은 나를 두고 죽어버리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품이 없어 수리가 불가능해진 로봇 강아지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장면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사람은 기계도 살아있는 것처럼 사랑을 퍼붓지만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는 매번 실패하고 만다는 것에 아이러니를 느낀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나누는 법은 모르고 사랑을 퍼부을 줄만 알아서 관계에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자아를 가진 독립된 두 주체가 만날 때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이별이 따라온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비슷하게 맞춰보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누군가는 이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쳐 사랑을 포기하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가 없어서 기어코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고야 만다. 이름 없는 들꽃, 연약한 새끼 고양이, 손때 묻은 일기장,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가수, 포근한 곰인형들에게 마음을 주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 공허감에 지친 테오도르마저 실체가 없는 OS에 마음을 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란 매일 사랑에 빠지고 매일 이별하는 것이고, 언젠가는 이별할 지라도 나와는 다른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때 '진짜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것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사랑은 기록되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