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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r 24. 2022

우리 이제 피임에 대해 말합시다.

1. 피임법의 역사

    실용적인 연애 조언을 하기 위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제가 있다. 섹스, 우리는 이제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섹스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갈등을 겪는다. 감정적 친밀함과 육체적 욕구의 간극, 파트너와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합의하는 것, 피임과 안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에서 발생하는 소통장애와 권력관계.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는 결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연애 조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섹스를 이야기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세요.'라는 안일한 접근은 하지 않겠다. 사랑은 사랑이고 섹스는 섹스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도 불만족스러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도 위험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 폭력적인 섹스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무력하며 전혀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섹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사랑이 없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한다. 


    포괄적으로는 연애, 사랑, 섹스라는 주제가 '관계'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다. '나'가 '나 아닌 타자'와 맺는 모든 관계 중 가장 친밀하여 '나'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마는 관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관계'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기본 중에 기본부터 배워야 하지 않겠나? 연애, 사랑, 섹스에 대한 모든 담화에서 일단 기본으로 언급할 것은 '피임'이다. 원치 않고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피하고 우리의 몸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 이 글은 피임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피임의 역사'를 다룬다.


피임법의 역사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 여성도 더욱 많았을 것이다. 의학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통계를 보면 2008년에서 2018년까지 10년간 임신과 분만에 관련해서 모성 사망자 수는 연평균 49.8명이었다. 분만 과정에서 임산부가 사망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과다 출혈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출산 후 40일 이내에 출산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하는 것을 '모성사망'이라고 한다.


    출산 과정뿐만 아니라 임신 기간 10달 동안의 생존도 지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농사와 수렵, 채집 등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임산부는 먹는 양은 두배지만 노동은 절반의 몫도 못했을 것이니까. 그래서 지금의 시각에서는 엽기적인 방법이나 주술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임신을 피하기 위해 애쓴 기록이 있다. 


   피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4천 년 전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악어 똥과 꿀을 섞어 좌약 형식으로 질 내에 넣어 피임을 했다는 기록이 파피루스에 적혀 있다고 한다. 악어의 똥을 몸속에 넣는 경악스러운 행위에도 불구하고 정자의 운동성을 저하시키는 정도의 효과였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수은을 복용해서 피임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기방의 기녀들이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나 음식 속에 몰래 수은을 넣어 피임을 시켰다고 한다. 기녀들은 자신이 먹는 것이 수은이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피임 효과가 있는 약인 줄 알고 먹다가 수은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수은은 분명 피임에 효과가 있었으나 중독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방법이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기생들 사이에서는 소금물을 성기에 바르거나 창호지를 콘돔처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관계 직후 7~8차례 펄쩍 뛰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는 미신도 있지만 미신은 미신일 뿐이었다.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피임법을 고민했다면 남성은 성병을 피하기 위한 피임법을 고민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콘돔과 유사한 형태의 다양한 피임도구들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돼지의 창자 등을 이용해 성기에 씌우는 덮개와 같은 도구였다. 그러나 두께가 두꺼워 성감을 감소시키고 가격이 비싸 여러 번 재사용해야 하는 사치품에 가까웠다고 한다. 콘돔이라는 명칭은 놀랍게도 사람의 이름이다. 17세기 중반 호색한으로 유명했던 영국 찰스 2세의 주치의였던 콘돔 백작이 성병 예방을 위해 만든 도구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어린양의 맹장에 기름을 발라서 만든 덮개와 같은 형태였다. 


현대적 피임법의 개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콘돔은 1855년 찰스 굿이어에 의해 발명되었다. 고무 경화 법으로 만들어졌으나 두께가 1~2mm에 달해 대중화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두께가 1mm나 되는 고무막을 씌운다면 돼지 창자를 씌우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성을 해방시킨 최고의 피임도구는 콘돔이 아니라 피임약이다. 스스로 약을 복용하면서 주체적으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주도적으로 번식의 목적인 섹스에서 벗어나게 되자 섹스는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자 쾌락의 도구가 되었다. 1960년 5월 9일 미국에서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인류 최초의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가 출시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는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고교 중퇴율은 하락했다. 

    경구 피임약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은 마거릿 생어(1879.09.14~1966.09.06) 일 것이다. 1879년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1912년, 낙태를 하려다 실패하고 피투성이로 입원한 새디 작스라는 여성을 알게 된다. 빈곤층이었던 새디 작스는 마땅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는데, 그녀의 죽음을 큰 충격을 받아 산아제한과 피임, 여성 해방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생어는 다산과 빈곤이 산모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산아제한 운동을 벌였다. 다양한 글을 집필하고 '피임'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피임이나 성에 대해 공개적인 저술, 연설 모두 불법이었기 때문에 생어는 여러 차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피임 투쟁을 벌임으로써 19세기부터 불법이었던 피임을 합법화하고 미국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에게 피임약 개발을 권유했다. 연구자금을 모으는데 마거렛 생어의 업적이 컸던 만큼 생어가 없이 피임약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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