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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an 25. 2022

밴드의 시대

3호선 버터 플라이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주류 음악계는 록밴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마 더이상 음반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시장구조의 영향이 클테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2005년 7월 30일 생방송 MBC음악캠프에서 발생한 록밴드 카우치의 성기 노출 사건일 것이다. 심지어 이 날 무대의 주인공은 밴드 럭스였고 함께 활동하는 밴드 동료들과 무대에 올라 젊은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니 대뜸 생방송 무대에서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한 카우치의 멤버는 '남의 잔치상에 깽판을 놓은 셈'이었다. 


      지상파 방송에서 전도유망한 인디밴드에게 무대를 주는 좋은 취지의 기획이었으나 이 날의 사고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음악캠프의 PD가 근신징계를 받고 '음악캠프'가 강제 종영하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인디밴드를 메인스트림으로 올리기 위한 노력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인디밴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남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음악캠프의 후속으로 방영된 '쇼! 음악중심'은 5분 지연 방송을 시도해 위와 같은 사건사고들을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오랫동안 주류 음악계는 기획사 주도로 제작된 아이돌팀들이 이끌어 왔다. 가요계의 어느 별이 지는 동안 다른 별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BTS가 나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항, 자유, 비주류의 감성을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딘가 썩 만족스럽지 않은 성과이기도 하다. 


    기획사 주도로 성장한 아이돌 팀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보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스타일을 가져오고, 좋은 음악보다는 비주얼이나 팬장사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대중 음악 차트에서 '대중'이 사라진 지는 오래 전이다. 이제는 팬들의 '스밍총공'만 남았고 그 방식은 '음원 사재기', '차트 조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자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어릴 때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는 아이돌들이 많은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때 동경했던 아이돌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우울증에 고통받는 것을 보며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는 아이돌들의 방긋방긋 웃는 얼굴들이 어딘가 기괴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그들의 필사적인 웃음 뒤에 눈물과 좌절을 본다. 나는 진심으로 더 이상의 아이돌 팀들이 달갑지 않다.


    스스로 원해서 무대를 만드는 아티스트가 보고 싶다. 더 좋은 음악이 뭔지를 고민하고 대중들의 취향에 관계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아티스트가 보고 싶다. 대중들의 막연한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보고 싶다. 설령 그 것이 낯설고 전혀 친절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꺼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만드는 아티스트가 보고싶다. 승자독식으로 죽어가는 대중가요판을 뒤엎는 지각변동을 가져올 아티스트가 보고싶다. 


    마치 엠넷 <밴드의 시대>에서 광기어린 이별노래를 부르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무대처럼 말이다. 원곡과는 다르게 조금 더 난해한 편곡으로 꾸민 무대지만 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몰입감이 매력적이다. 관중들도 처음에는 충격적인 표정을 짓다가 점차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게 보인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이 곡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2022년에도 여전히 2013년 버전의 무대를 찾아보고 곡을 듣는다. 그들의 음악은 유행과는 동떨어진,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2013년 MAMA에서 올해의 가수상은 지드래곤, 올해의 노래상은 조용필의 <Bounce>, 올해의 앨범상은 EXO가 받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올해의 가수상, 노래상, 앨범상 모두 BTS가 가져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OuA1crmnc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내가 음악사나 현대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아는척한다고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생각이 옳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수치와 통계로 냉철하게 시장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밴드 음악에 대한 얕은 호감을 가진 이름없는 대중 1인'의 얄팍한 아는체와 아쉬움에 불과하다. 아마 지금 상황에 대해 가장 큰 아쉬움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아티스트들 자신일 것이다. 


    이제는 해체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겠지.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이 수록된 4집 앨범의 이름은 <dreamtalk>. 꿈을 노래하던 그들은 현실로 돌아갔다. 그들과 내가 고대하는 '밴드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난 여전히 꿈을 꾼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개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를,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하기를, 먹고 사는 현실보다 '꿈'과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기를...


아래의 링크는 온스테이지 무대의 리마스터 버전, <밴드의 시대>영상보다 좀 더 안정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둘 다 라이브 영상을 가져왔는데 음원보다 라이브에서 더 감정을 짙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컬 남상아는 프랑스로 이주했기 때문에 이런 무대로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gTPJpvhJuFw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3호선 버터 플라이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믿기싫지만 바로 오늘

진눈깨비가 거리를 뒹구네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너는 모든 걸 빼앗아 가네

진눈깨비가 얼굴을 때리네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매달려봐도 매달려봐도

가지말라고 제발 가지말라고

매달려봐도 소용이 없네


진눈깨비 흩어지는 거리에

도망치듯 멀어지는 니 뒷모습

깊어질수 없다는 그 거짓말

너에게 침을 뱉고 싶어지는 이 기분


하지만 너에게 길을 묻지는 않았네

하지만 너에게 길을 묻지는 않았네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제발 가지말라고 오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제발 가지말라고


진눈깨비 흩어지는 거리에

도망치듯 멀어지는 니 뒷모습

깊어질수 없다는 그 거짓말

너에게 침을 뱉고 싶어지는 이 기분

하아아아 나나나나나나


하지만 너에게 길을 묻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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