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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r 19. 2022

그대는 어떻게 공허를 견디는가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유라

    얼마 전 내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카카오 음 mm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실시간 음성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방이 열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에 참여한다. 그날은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방에서 편안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잔잔한 배경곡을 들으면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소속감과 친밀감의 욕구가 채워진다.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와의 친밀함은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친밀함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는 때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더욱 솔직해질 수 있다. 현실의 삶에서는 외모나 나이, 사회적 지위 등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흔치 않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때로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나에 대한 정의'가 단단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인격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와 이미지를 벗어던진 곳에서 나는 소소한 자유를 느낀다.  


    문제는 소통방과 연결된 단체 카톡방에서 한 유저가 자신이 자살을 할 생각이라는 말을 남기고부터였다. 죽을 생각을 하고 건물 옥상에 서 있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계정을 보니 단톡방에서만 나갔고 소통방에는 남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메시지를 읽은 모두가 비상상황임을 직감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급하게 운영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우리 모두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 시간쯤 흘렀지만 자살을 생각한다던 유저는 끝내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건물 옥상에 있었는지, 혹은 이미 실행에 옮긴 후였는지, 혹은 이 모든 게 의미 없는 장난이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방이 종료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죽을 사람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자살하겠다는 말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쪽이든 그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죽고자 하는 이에게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삶이 분명 죽음보다 나을 것이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들으면서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라는 유라의 가사는 '공허'를 노래한다. 가사 속 순우리말인 '시나브로'라는 단어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의 부사이다. 가사 속에 시나브로라는 단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허무함이 나를 관통할 때'라는 의미를 전한다. 인간의 삶 곳곳에 스며있는 공허를 완전한 문장으로 묘사한 것 같다. 공허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깊고 검은 구멍을 낸다.


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언젠가는 죽어버릴 이 생명을 질질 끌고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저 심장이 뛰는 만큼만 살아지는 수동태의 무기력한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 공허에서 도망치려 매일같이 발버둥을 친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몸을 괴롭히듯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든 이 세상에 내가 살다 간 흔적을 남기려 애쓴다. 그리고 밤이 오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 푹 파묻힌다.


    삶의 공허를 인지했다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끔씩 해일처럼 마음을 덮치는 우울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 가사를 쓴 가수는 그렇게 우울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까? 그래서 마지막에는 '우리는 충분했'고 '오후엔 사랑을 말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은 잠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충분했다고 말해주려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떻게 이 공허를 견디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Euw4ZQyi4K8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Beat regards)-유라

거기 누구 있나요?
또 쉬이 목을 매나요?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
힘들었나요?
뭉툭한 너의 수화기 속에
거저 주어지는 마른 덤덤함을 토해요

시나브로 허무함이 날 관통할 때
잠식된 날 찾아 품에 데려다줘
순수한 나비 그림자를 만들어
동그란 물빛의 활주로
우린 느닷없게 숲이 되어줄게

Ah, This is fearless
No, no, no judgement
You've got to lead
Green, greener, this is fearless
Ah,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
우리를 흔들겠어요

요즘 어때요?
왜 근심을 몸에 새겨요?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
잘 지냈나요?
부드러운 너의 입버릇 속에
거저 주어지는 마른 덤덤함을 토해요

시나브로 허무함이 날 관통할 때
잠식된 날 찾아 품에 데려다줘
순수한 나비 그림자를 만들어
신비한 출구로 날아가
우린 느닷없게 숲이 되어줄게

Ah, This is fearless
No, no, no judgement
You've got to lead
Green, greener, this is fearless
Ah, 어떤 우울이 우리를 흔들겠어요
우리를 흔들겠어요

어떤 사람이 우리를 흔들겠어요
우리는 충분했어요
오후엔 사랑을 말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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