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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l 20. 2022

덜 여문 사랑에 대해서

<달>-구. 오이스터/현. 9001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어려운 이유

    어린 사람만 어린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몸의 나이와 상관없이 감정은 여전히 5살 어린아이 수준이다.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본능적이어서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사랑이 필요하다. 감정적 사랑과 육체적 접촉 없이 살아가는 삶은 지독하게 외롭다. 그 외로움을 충족하려 하룻밤 사랑에 몸을 맡기고, 나를 떠날 수 없는 동물에게 위로받는지도 모른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 접촉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누군가의 살결, 따뜻한 온기, 보드라운 숨 같은 것을 나누고 싶다.


    이런 날것 그대로의 욕망도 어린 나이에는 용서받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가장 큰 특권은 '실수를 용서받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도,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러도, 자기 자신을 망쳐도 젊은 시절의 치기로 이해받을 수 있다. 어리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고 그렇게 하나씩 배우는 거라는 응원도 건넨다. 그렇게 수많은 실수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용서받지 못할 나이'가 된다.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기 힘는 것이 나이듦의 저주였다. 


    20대의 사랑에서도 나는 더 많이 이해받고 용서받았다. 남자친구와 유치한 이유로 싸우고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려도 괜찮은 때였다. 미성숙한 관계맺음에 대해 고백해도 사람들은 '다 그렇게 배우는 거'라고 위로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있고 30대가 된 후에는 조금 더 성숙한 척 하지만 여전히 관계 맺기는 어려운 과제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그대로인데 쓸데없이 고집과 방어기제만 늘어갔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두려움은 감정 표현을 가로막았다. 뜨겁고 절절하게 사랑을 말하기 보다 쿨하고 담백한 척 한다. 


감정도 투자의 대상

    요즘 '사랑이 될 수 있었던 흐릿한 감정'이 끝내 사랑이 되지 못하고 끝나는 일이 많다. 30대의 남녀는 제법 현실적인 계산을 하면서 리스크를 줄이는 감정 투자를 한다. 어차피 관계가 끝나면 쏟아부은 감정과 시간, 돈은 낭비가 되고 말 뿐이다. 한 부류는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는 조건으로 사람을 만난다. 결혼, 출산, 양육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에 합당한 조건을 요구한다. 같은 목표를 갖지 않거나 조건이 맞지 않은 사람과는 빨리 헤어져야 한다. 우리의 시간, 돈, 감정은 한정적인 자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류는 가벼운 관계로 회피한다.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려 처음부터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룻밤 인연은 왠지 공허한가 보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선에서 FWB(friends with benefit)라는 애매한 관계에 머문다. 섹스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 친구사이라지만 사실 '유사연애'인 셈이다. 사랑만큼 감정을 투자하지 않지만 사랑에 비슷한 접촉은 가질 수 있다. 구속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관계는 쉽게 흩어진다. 사랑이 없고 섹스만 있는 관계에는 우정도 자라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들은 우정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덜 여문, 미숙한 사랑

    10대 청소년들의 덜 여문 사랑은 풋사과 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미숙하지만 이 경험을 가지고 빨갛고 탐스러운 관계를 만들거라는, 아이들의 뽀얀 얼굴처럼 덜 자라서 예쁜 감정이었다. 반면 30대의 덜 여문 사랑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모양으로 남았다. 태풍이 지난 후 과수원의 사과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깨진 모양이었다. 어떤 사랑은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못해 안에서 곪아버리고 어떤 사랑은 온전하지 않고 반쪽짜리만 남았다. 어떤 사랑은 흠집이 가득하고 어떤 사랑은 속이 비었다. 이렇게 덜 여문 감정들은 사랑으로 자랄 거라는 희망도 없이 썩어버릴 것이다. 


    "영원할 것에 은유한 어린 사랑." 한때는 이 감정을 온전히 전할 단어가 세상에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밤새 편지지에 사랑을 고백하다 하나하나의 낱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해 낱말 사이의 간격에서 사랑이 묻어나길 바랐다. 너무나 사랑해서 가슴이 잔뜩 부풀어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함부로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지껄이기도 했고 지키기 못한 약속이 오래 가슴을 할퀴기도 했다. 감히 그를 내 삶의 태양으로 두고 달처럼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그 모든 경험후에 이제는 좀 성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우리는 덜 여문 마음으로 미숙한 사랑을 한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밴드 오이스터는 이름을 바꿔서 9001(나인티오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밴드의 이름은 90년대생들 중 No.1인 되자는 의미라고 한다. R&B, 재즈, 얼터너티브 락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 4인조 밴드다. 멤버 전원은 호원대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학교에서 합주를 하다 결성된 팀이라고 한다. 보컬인 조곤은 JTBC슈퍼밴드에 출연한 적도 있다. 김지범, 신현빈과 함께 Love me through the night이라는 시티팝을 부르기도 했다. 밴드드 멤버 전원이 예선에서 <달>을 불렀지만 보컬인 조곤만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방송에서 라이브가 통편집되었지만 후에 유투브 영상으로 공개되었다. 기타리스트는 김준협으로 JESE라는 활동명을 가지고 있다. 조곤과 김준협은 슈퍼밴드에서 만난 드러머 황민재와 함께 Kidult라는 곡을 발표했다. 불안한 청춘들의 우정을 소재로 만든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KkP_jRHh0

<달> -구. 오이스터/현. 9001

달을 쳐다 보았네 
창을 열고 내게 손짓 했던 너
어둔 밤이 덮칠 때
창틀에 앉아 나를 안아준

달이라는 이름에
한아름 미소를 짓던 너 때문에 


달이 뜨면 못자고
해가 떠야 그제야 잠이드네 


눈을 떼지 못해 빛나던 네 모습에
눈이 멀어도 그저 좋을줄만 알았네

영원할 것에 은유한 어린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밤새 울었네


그대가 떠나가고, 나 혼자 남아있던 밤
영원한 약속만이 남아 나를 비추던 밤


눈을 떼지 못해 빛나던 네 모습에
눈이 멀어도 그저 좋을줄만 알았네
영원할 것에 은유한 어린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밤새 울었네

워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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