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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afe 9 Room

스타벅스 리셀러에게 고함

리셀러, 되팔이, 되팔렘이라고 불리는 이들

by 구름조각

처음 스타벅스에서 리셀러를 보았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스타벅스 커피에는 전혀 관심 없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귀여운 머그컵 세트를 몽땅 구매하겠다고 하셨거든요. 늘 해오던 일인 것 마냥 준비해 온 에어캡과 쇼핑백에 차곡차곡 넣어 가시더군요. 곧이어 여자 한 명이 다른 굿즈를 사 가더니 저녁에는 남자 한 명이 와서 굿즈를 사 갔습니다. 오래 일한 파트너가 귀띔해주더라고요.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리셀러들이라고요. 그들은 새로운 MD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예쁘다 싶은 것들은 싹 쓸어갔습니다.


지난여름 시끌벅적했던 프리퀀시 기간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리셀러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매장을 방문해 캐리백을 20개, 30개씩 받아갔습니다. 여러 계정을 돌려쓰는지 한 계정당 받을 수 있는 수량을 제한해도 소용없더군요. 이 문제의 캐리백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고 대규모 리콜 사태가 시작된 후 가장 화가 났던 사람은 아마 이 리셀러 들일 겁니다. 쌓아놓은 캐리백을 팔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 리셀러들은 곧 매장마다 캐리백을 50개씩 던져놓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캐리백 한 개 마당 쿠폰 3장씩 드리고 있으니 쿠폰만 150장에다 3만 원짜리 교환권도 150만 원어치 받았겠네요. 물론 50개에서 끝난 게 아니고 그 후로도 몇 번씩이나 매장에 캐리백을 교환하러 오더군요. 그 캐리백을 일일이 뜯어서 분리수거하고 회수 조치하고 쿠폰을 발행하는 건 파트너들이죠. 본사는 이런 어려움에 신경이나 쓸지 모르겠네요.


리셀러가 존재한다는 건 이들에게서 굿즈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잖아요. 여러 사람들의 계정으로 예약하고 매번 발품을 팔아 굿즈를 쓸어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이익이 되니까 리셀러들이 계속 스타벅스를 찾는 거겠죠. 그런데 스타벅스가 나이키나 샤넬도 아니고 그렇게 굿즈를 구매해야 할 만큼의 브랜드 파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이따위 중국제 스테인리스 텀블러와 조악한 굿즈에 왜 돈을 쓰나요? 스타벅스 굿즈를 모으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활용품들을 모으는 건가요?


물론 소비자들의 취향이야 각양각색이니 제가 의문을 가질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심으로 스타벅스 굿즈가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잘 알려진 브랜드의 굿즈를 고르고 싶을 수도 있어요. 텀블러를 구매하면 전 메뉴, 전 사이즈 음료를 구매할 수 있는 텀블러 쿠폰도 주니까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아니면 정말로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스타벅스는 오랜 기간 충성고객을 유지하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굿즈를 구매하고 컬렉션을 자랑하는 유튜브 영상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정말 스타벅스의 굿즈를 사랑하는 고객들이 많다면 더더욱 리셀러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죠. 매번 새로운 MD가 출시될 때마다 예쁘다 싶은 것들은 리셀러가 싹 쓸어가 버리니 정말 구매하고 싶은 고객들은 기회를 잃게 됩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가족단위나 여러 명이 협업해서 리셀러 활동을 하면 일반 고객들은 상대할 수가 없잖아요. 7시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 새벽 6시부터 매장 앞에 줄 서는 리셀러들을 제치고 상품을 구매하는 건 불가능하죠. 리셀러들을 되팔이나 되팔렘이란 단어로 비꼬는 이유가 뭔지 아시겠죠?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고 사간 굿즈들에 차익을 붙여 자기들의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랍니다.


누구는 자유경쟁 시장에서 리셀러의 수익활동이 정당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 갖고 싶은 상품이 있을 때 아침부터 줄 서야 하는 수고를 안 하고 웃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으니 편하다고 하죠. 이런 소비자는 리셀러가 제시하는 차액이 자신의 기회비용보다는 저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 리셀러는 소비가 많을 상품을 독점해서 다른 사람들이 구매할 기회를 빼앗고 상품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독점 행위를 하는 겁니다. 그로 인해 상품이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비용으로 거래되는 문제가 생겨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상적인 소비욕구를 떨어뜨려 시장질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상품을 원하는 사람이 구매할 수 없게 되거나 실제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되면 만족도가 떨어질 테니까요. 팬심을 이용해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웃돈에 거래하는 암표상들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https://www.sisa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4110

법적으로는 본인들이 사간 상품에 웃돈을 얹어 되파는 행위를 규제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문 리셀러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이 와도 스타벅스 파트너 입장에서는 친절하게 고객응대를 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이들이 도의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본사에서는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거나 굿즈를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나 SSG.com에서도 판매하면서 되팔이 방지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요를 없애는 것이겠죠. 아무도 리셀러들에게서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겁니다. 아이돌 콘서트나 인기 뮤지컬의 암표, 명절날 기차 암표, 한정판 운동화나 최근 인기 있었던 박재범의 원소주, 신상 명품 등등... 갖고 싶은 욕구보다 도덕적인 선택으로 되팔이들에게서 구매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이런 소모적인 상품을 찍어내는 행사를 중단하는 일이겠죠. 물론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저 매 시즌마다 실제로 리셀러들을 만나는 일개 스타벅스 직원의 생각일 뿐입니다. 할로윈 시즌이 시작되어서 또 리셀러들이 예쁜 MD상품들을 싹 쓸어가겠네요. 그럼 한발 늦은 고객분들이 "ㅇㅇ없어요?"라고 묻고 울상을 지은채 돌아가겠죠. 정말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일 겁니다. 저같은 파트너도 리셀러에게 면전에 대고 직접 비난할 수는 없으니 대나무 숲에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외치는 이발사의 심정으로 블로그 글이나 쓰겠습니다.

되팔이들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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