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기억과 기록의 이유
대청소를 하다 보면 뜻밖의 추억과 만날 때가 있어요. 구석구석 먼지를 닦다 보면 침대 아래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을 찾거나 서랍장 안에서 오래된 사진을 발견하곤 해요. 얼마 전 서랍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사진에는 젊은 시절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흰머리 한 올 없이 건강하고 젊은 부모님의 사진을 넘겨보다가 괜히 혼자 울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세계는 반드시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박제된 과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지만, 의미를 찾는 것은 머리의 일이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애틋함뿐입니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저를 안은 어머니의 까만 머리칼이 애틋하여 책상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애틋하다'의 뜻은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라고 합니다. 부모님의 얼굴에서 젊음이 사라진 것이 섭섭하고 시간을 돌이킬 수 없어 안타깝고 남은 시간을 세어보며 애타는 마음입니다. 저의 부모님도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때 이런 마음일까요? 요즘 어머니는 부쩍 외할아버지의 밥상을 신경 쓰세요. 얼마 전 외할아버지는 생신날 외식하자는 것도 마다하시고 어머니가 만들어준 잡채만 드셨다고 해요. 홍합과 소고기를 넣어 호화롭게 끓인 미역국도, 달고 부드러운 불고기 한 점도 드시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외할아버께서는 종종 먹는 일이 괴롭다고 하십니다. 무얼 먹어도 입이 쓰고 소화가 안 된다고요.
올해부터는 김장도 하지 않기로 하셨답니다. 배추를 절이고 김칫소를 치대는 일도 번거로우시다고 하셔요.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서 받아온 김치는 젓갈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맵고 짭짤한 김치였습니다. 황석어젓과 멸치젓, 새우젓을 섞어 만든 김치는 금방 만들었을 때는 콤콤한 맛이 강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이 더해져 김치찌개라도 끓이는 날에는 맛있는 냄새가 현관문 밖으로 새어 나올 정도였어요. 친할머니 댁에서 만든 김치는 젓갈은 적게 넣고 생굴을 넣어서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좋았어요. 김장철에 양가에서 김치를 받아오면 할머니의 김치를 먼저 먹고, 외할머니의 김치가 묵은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족의 전통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풍족한 겨울도 옛날 일이 되고 말았네요.
어머니가 번거로운 게 싫어서 김치도 사 먹자고 해봤지만, 공장에서 만든 김치는 어쩐지 들쩍지근한 맛이 납니다. 상표 뒤에 원재료 표시를 읽어보면 꼭 설탕 같은 것이 들어있죠. 결국 제 혓바닥이 제일 먼저 '바깥 김치'를 거부했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길들여진 '가족의 김치 맛'이 세포 하나하나에 알알히 박혀있기라도 할까요? 김장날까지 간단하게 먹는다고 담은 엄마의 김치만이 산뜻하고 새콤, 매콤하게 입맛을 당기죠.
김장철에 김치 양념을 남겨 냉동실에 보관하면 1년 동안 겉절이를 만듭니다. 봄이면 부추와 쪽파 김치를, 여름에는 오이소박이를, 가을에는 깍두기와 배추 겉절이를 만들거든요. 매번 김치 양념을 만들기는 번거로운 일이죠. 하나의 김치 양념장에 이런저런 재료를 넣으면 매번 다른 맛의 김치가 됩니다. 이번에는 가볍게 절인 배추에 당근과 부추를 넣어 겉절이를 만들었죠. 한창 맛이 들어 달달한 배춧잎에 짭짤한 까나리 액젓을 넣고 양념장을 버무립니다. 마지막에는 통깨를 듬뿍 뿌려 김치 통에 담아 주고 새콤하게 익기를 기다리죠. 계란을 반숙으로 익힌 라면에 배추김치 한 장 한 장 올려 먹는 맛이 끝내줍니다. 하루 세끼 아침, 점심, 저녁 상에 매번 같은 김치를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문득 '엄마의 김치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날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없어서 엄마 김치를 못 먹는다'라고 생각하니 내 입에 들어갈 것만 걱정하는 못된 딸이 된 것 같죠. 어머니께서 김치를 담글 때마다 옆을 기웃대며 레시피를 기록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인 걸 압니다. 같은 음식도 어머니의 손 맛과 나의 손 맛이 다르니 그 맛이 애틋하고 그리워서 못내 견딜 수 없게 되겠지요.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면 다시 꺼내 보는 날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일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