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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12. 2023

글쓰기 장인의 도구

만년필, 노트, 태블릿, 노트북, 스마트폰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진정한 장인은 수없이 많은 도구를 거쳐 자신의 손에 가장 알맞은 도구를 찾습니다. 셰프들이 자기만의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세요.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자신의 이상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도구를 이용합니다. 수많은 재료와 도구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손에 꼭 맞는 도구들이 하나씩 늘어나요. 그러니 손으로 글 쓰는 작가들도 다를 건 없겠죠.

 이름 없는 브런치 작가인 저도 손에 익은 만년필과 잉크를 알맞게 흡수하는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컨버터 형식의 만년필은 잉크가 금방 닳기 때문에 한창 글쓰기의 속도가 붙었을 때 흐름을 끊기 마련입니다. 투명한 배럴에 잉크를 가득 채워 쓸 수 있는 피스톤 필러 만년필은 가장 좋은 선택이죠. 획이 많은 한글을 휘갈겨 쓰는 데에는 독일이나 영국 브랜드의 만년필은 좋지 않아요. 알파벳을 쓰는 국가에서 생산되는 만년필 닙은 살짝 두꺼운 편입니다.

트위스비 에코 클리어(출처 하단)

 반면 획이 많은 한자를 써야 하는 대만, 일본, 중국에서 생산된 만년필의 닙은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획을 그을 수 있어요. 그런 이유로 대만의 트위스비 에코 만년필을 선택했고 여기에 모나미에서 판매하는 잉크를 채워 넣었어요. 트위스비 에코의 투명한 배럴에 모나미의 예쁜 '흩날리는 벚꽃 길'색이나 '하늘거리는 라일락' 색을 넣으면 황홀하죠. '흩날리는 벚꽃 길'은 진한 분홍색, '하늘거리는 라일락'은 맑고 푸른 보라색입니다.

모나미는 흐름이 좋은 수성 잉크로 다양한 색을 판매하고 있어요. 조만간 국내 브랜드에서도 고급 만년필이 생산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몰스킨은 종이가 얇아서 만년필로 쓰면 잉크가 뒷면에 비치는 게 참 싫어요. 시험삼아 로디아 노트를 산 후에는 로디아에 정착했습니다. 로디아 노트 사이즈는 반드시 A5, 표지는 광택이 없어야 합니다. 속지는 줄이 있어야 하고 모눈이나 백지는 구매하지 않아요. 되도록이면 붉은색을 선택하는 것도 나름의 고집이겠네요. 어딜 가든 가방 안에 읽을 책, 노트, 만년필을 챙깁니다. 이 아날로그 감성을 놓지 못해서 가방이 점점 무거워지는 거겠죠?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구매했지만 어쩐지 낡은 노트북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랑 낯가리는 중이거든요. 요망할 정도로 세련되고 지나치게 비싼 이 친구와 친해질 때까지는 낡은 노트북에 손이 갈 것 같아요. 노트북은 중고로 구매해서 벌써 5년째 사용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난 후에도 긴 시간, 이 노트북과 울고 웃었답니다. 정이 들어서 쉽게 버릴 수가 없네요.


 에덴의 동쪽을 집필한 존 스타인벡은 파버 블랙윙 602 연필을 300자루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연필은 심이 무른 게 특징이라 오래 집필해도 손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다고 해요. 뒤통수에 납작한 지우개가 달려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쉽게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겠죠.

집필중인 헤밍웨이 (출처: 픽사베이)

 헤밍웨이는 '파란 표지의 공책과 연필 두 자루와 연필깎이, 대리석 상판 테이블, 크림 커피의 향기, 분주히 쓸고 닦은 이른 아침의 정취, 그리고 행운'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른 아침 단골 카페테라스에 앉아 크림커피를 홀짝이며 파란 노트를 반듯하게 펴고 연필을 돌려 깎고 있는 헤밍웨이의 모습이 아른 거리네요. 오만과 편견을 쓴 작가 제인 오스틴은 양피지에 깃펜과 같은 고풍스러운 취향을 가졌습니다. 영국의 시나리오 작가인 닐 게이먼은 전날 얼마나 글을 썼는지 알기 위해 날마다 만년필의 잉크색을 바꾼다고 했고요.


 브런치 작가인 우리가 필기구에 좀 까다로워지는 것도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한 초석이겠죠. 영감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마땅히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요. 손에 쥔 도구가 여러분의 영감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완벽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글을 쓰지 못한다는 식의 자기변명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카페 냅킨에 휘갈길 수도 있고 스마트폰에 언제든 생각하는 글귀를 적을 수도 있잖아요? '샬롯의 거미줄'로 유명한 미국의 동화작가 앨윈 브룩스 화이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글쓰기에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는 작가는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죽는다.
-E.B 화이트


 일단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멈추지 않고 쓰는것이 중요하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필기구는 무엇인가요?


트위스비에코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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