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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15. 2023

조회수 백만 이후의 날

별 다른 것 없는 날

 얼마 전에 연재한 스타벅스 진상열전 이후 누적 조회수 100만이 넘었습니다. 연재 이전에도 90만 언저리였기 때문에 연재가 끝날 즈음이면 조회수 100만이 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100만이라는 숫자가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아요. 따지고 보면 99나 100이나 무한대의 숫자 중 하나일 뿐이죠.


 다만 한국인들은 곰이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거나, 아이의 100일을 축하하거나,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고 100도에서 끓는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잖아요? 무의식 속에 100이라는 숫자는 인내의 상징인 동시에 완성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큰둥한 표정 아래에도 100만이라는 숫자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적 조회수 100만이 넘어도 천지가 개벽하거나 코끼리 부대의 팡파레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소소하게 가족들에게 알리고 캔맥주나 따는 거죠. 치-익. 경쾌한 캔맥주 따는 소리를 배경 삼아 조회수 100만의 소감을 적어봅니다. 드디어 곰이나 호랑이에서 사람이 되었으려나요?


책들의 무덤

 이상하게 100만이라는 숫자에도 영 기분이 시들합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였을 테죠. 스스로 자랑스러운 것은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2년이 넘는 시간을 지속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 쉽게 흥미를 잃는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중간중간 다리를 절면서도 계속 걸어왔다는 것이 대견하다 싶은 부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기적으로 글을 공개하면서도 왜 책 한 권 내는 것에는 이렇게나 망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공개한 글만 엮어도 적당한 단행본 1-2권쯤은 낼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요? 굳이 종이로 만든 책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서 일까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다들 이와이 슌지감독의 영화 러브레터 같은 풍경을 떠올리더라고요.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출근하면 조용한 책장 사이에서 러브레터나 발견하는 낭만이요. 우리의 낭만에 비해 현실은 늘 실망스럽답니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어두운 지하서고에서 책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책장정리를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그 지하서고는 마치 책들의 무덤 같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 한때 반짝 인기를 끌었다가 잊힌 책들, 문장 수준도 편집도 허접한 책들을 보면 불쏘시개로나 쓰면 딱 좋겠다 싶어요. 이쯤 되면 라면 받침이 된 책들은 나름의 쓸모를 찾았다고 안도해야 합니다. 지하서고에 들어간 책들은 고이 모셔놓은 종이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


 책을 내겠다는 열의를 불태우다가도 영 심드렁해지고 마는 것은, 그 지하서고에서 본 적나라한 현실 때문입니다. 모든 책의 끝은 자리만 차지하는 종이 쓰레기나 불쏘시개에 불과한 거죠. 그러니 책을 내는 일이 자주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얼마 전까지는 꽤나 야망에 불타올랐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29793


인생은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최근에 좋은 책 한 권을 읽었어요. 유유 출판사에서 출판한 윌 듀런트의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일단 저는 유유 출판사의 편집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요. 군더더기 없고 간결합니다. 화려한 일러스트나 유명인들의 추천사나 의미 없는 미사여구도 없어서요. 아주 개인적인 취향이죠.


 작가인 윌 듀런트는 철학자인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저자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답니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나는 자살할 생각입니다."


 어느 늦가을 집 마당에 쌓인 낙엽이나 한가로이 쓸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슴이 쿵 내려앉지 않나요? 이런 때를 대비해 살아가는 이유를 10개쯤 미리 준비해 놓은 사람은 없겠죠. 철학자인 윌 듀런트 씨도 이 질문을 받고 퍽 당혹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횡설수설했지만 낯선 남자에게 새로운 삶의 이유를 전하지는 못했다고 해요. 그 남자는 사라졌고 이후의 행방은 알 수 없습니다.


 낯선 이가 남긴 질문이 이 철학자를 지독히도 괴롭힌 모양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닌 100명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죠. 뭔가 폭탄 돌리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인가요? 저자는 자기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철학적 난제의 실마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찾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각 스포츠, 저널리즘, 예술, 철학, 정치,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사는 이유'에 대한 답장을 모아 편집한 것이 이 책의 구성입니다. 보낸 편지 한 통과 그에 대한 답장 100가지. 그중에는 이름 없는 사형수의 편지와 저자 본인의 답도 있었어요.


 책 소개는 이만 하도록 하고, 좋은 책이니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 몇 가지를 발견했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는 이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이 짧고 유쾌한 문장 하나가 저를 가볍게 해 주네요. 너무 심각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잖아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작가님도 열심히 글을 쓰시잖아요. “


그래서 제가 껄껄 웃으면서 답했어요.


  “아니요. 저는 열심히 쓰지 않아요. 열심히 쓰면 머리가 뜨거워져서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되거든요. 그냥 영감이 오면 쓰고 우울이 오면 쉽니다.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었더니 오히려 계속 쓰게 되던데요.”


 지금까지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상당히 즐기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지만 싫어한다고 해서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당분간은 느긋하게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 보려고요. 늘 눈앞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듯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써보려고요.


 여러분들은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시죠? 저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겼는지 몰라요. 이 글이 인터넷 세상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늘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은 친근한 이 관계가 저는 꽤나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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