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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May 17. 2023

이것은 사랑 노래가 아닙니다

영감을 주는 The Smiths의 노래들

 지난 글에서 더스미스와 범블비 이야기를 소개한 것에 이어  더 스미스의 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500일의 썸머>의 초반부에 주인공인 톰과 썸머를 설명하는 짧은 네레이션이 흘러나온다. 톰은 섬세한 감정을 가졌고 우울한 영국 밴드 음악을 좋아하지만 날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접시나 깨다가 한참 어린 여동생에게 상담받는 남자다. 반면 썸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을 믿지 않지만 매력 있고 감정에 솔직한 여자다. 영화는 철저하게 톰의 서사와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썸머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1. 사랑은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더 스미스의 곡은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톰과 썸머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엘리베이터 씬이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톰은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고 있고 썸머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둘은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는데 썸머가 톰의 헤드셋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먼저 말을 건넨다.

“I love the Smiths.”

“Sorry?”

“I said i love the Smiths.”

 톰은 음악취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썸머에게 홀딱 반하게 된다. 이때 톰이 헤드셋으로 듣고 있던 곡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고 썸머는 가사 한 줄을 따라 부른다.

“To die by your side is such a heavenly way to die.” (네 옆에서 죽는다면 그건 최고의 죽음일 텐데.)

 틀림없이 1980년대 활동한 영국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가사까지 따라 부르는 취향이라면 흔치 않은 공통점이긴 하다. 거기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는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곧 썸머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톰은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Holy shit…”


https://youtu.be/LvC55e-c888


 두 번째로 더 스미스의 곡이 등장한 장면은 톰이 썸머에게 일종의 눈치를 주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음악을 트는 장면이다. 그때 나오는 곡이 더 스미스의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이다. 이 곡의 가사는 ’이번 한 번만은 내가 원하는 걸 주세요 하느님‘ 정도의 내용이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신호를 주기 위해 한다는 게 기껏 내가 원하는 걸 달라고 신에게 비는 노래를 틀어 놓는 것이라니… 당연히 썸머는 음악에 신경도 안 쓰고 퇴근하고, 톰은 혼자 상처받아서 친구들에게 투덜댄다.


 사실 썸머가 톰의 취향에 먼저 관심을 가져줬다면 당연히 톰은 썸머의 취향을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줬어야 한다. 썸머가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고 취향을 통해 상대를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톰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서 ‘신호’를 주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전하기보다 상대가 알아서 눈치채고 다가와 주길 바라는 것이다. 단순히 연애에 서툴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이후 썸머와의 관계가 깊어지는 동안에도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톰은 썸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단 자신의 감정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키스를 한 것도 썸머, 옷을 벗고 침대에서 기다린 것도 썸머, 비를 맞고 톰에게 사과하러 온 사람도 썸머였다. 관계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톰은 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톰과 헤어진 후 썸머는 결혼을 한다.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다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썸머는 톰과 함께 데이트했던 벤치에 앉아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식당에서 내가 읽고 있던 ‘도리안 그레이’에 대해 물어봐 줬어.”

그 사소한 관심에서 톰에게서 찾지 못했던 것을 찾는다. 톰은 썸머를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진정으로 썸머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썸머는 톰과의 관계에서 늘 외로워했고 정착하지 못했다. 썸머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다른 시각으로 톰이 놓친 것들이 더 잘 보일 것이다.

2. <500일의 썸머>와 <봄날은 간다>의 공통점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한국 영화의 <봄날은 간다>가 떠오른다. 어딘가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소심한 남자 주인공과 적극적이고 매력이 넘치지만 변덕스러운 여자 주인공이 그렇다. 상우와 은수 같은 톰과 썸머를 보면서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넘어서는 공통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련함. <봄날은 간다>가 좀 더 사랑의 아련함에 가깝다면 <500일의 썸머>는 관계를 통한 내면의 성장에 집중한다.


 흔히들 <봄날은 간다>의 은수를 x 년이라고 욕하고 상우를 순진한 피해자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영화가 상우의 감정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은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상우의 모습과 은수와 헤어진 뒤 고통스러워하는 상우의 모습을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상우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오히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상우가 불편했다. 자신의 감정에 푹 빠져 은수가 왜 진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지 보지 못한다. 은수는 이혼한 적이 있고 결혼하자는 상우 앞에서 긴장한다. 은수가 어떤 이유로 이혼했고 그것이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는 묻지 않는다. 또 놀라운 점은 상우가 은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우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것은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장면이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자신의 억울함과 은수에 대한 원망을 잔뜩 응축해 놓은 이 대사를 듣고 상우라는 인물에게 실망했다. 한 번도 은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퍼붓기 급급했으면서 사랑이 변했다고 은수를 다그치는 것처럼 보였다. 떼인 감정을 받으러 온 빚쟁이 같은 태도에 내가 은수였어도,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은수를 욕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은수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좋아하는 영화는 여러 번 보게 된다.

 <500일의 썸머>는 톰의 입장에서 보면 톰이 이해되고, 썸머의 입장에서 보면 썸머가 이해된다. 만약 영화가 조금만 더 길어서 썸머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썸머가 마냥 나쁜 x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비록 두 사람이 헤어졌지만 이후 각자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보여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랑을 믿지 않던 썸머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결혼했다. 감정적 방황을 끝내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기까지 내면이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톰과의 관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소극적이고 도전적이지 못했던 톰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도전이 취업으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톰은 새로운 사람에게 끌리고 그의 이름은 오텀(가을)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톰이 한층 더 성숙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만약 <500일의 썸머>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꼭 한번 보길 추천한다. 이미 여러번 봤다면 오늘 소개한 더스미스의 노래 가사를 생각하면서 한번 더 보길 추천한다. 나는 이미 3번이나 이 영화를 봤는데, 첫 번째에는 톰의 입장에서 이해했고 두 번째에는 썸머의 마음에 공감했다. 3번째는 좋아하는 밴드의 가사를 떠올리면서 다시 톰의 마음에 공감했다. 톰은 진심으로 썸머를 사랑했다. 그래서 <500일의 썸머>의 주인공 두 사람 모두 너무나 사랑스럽다.

 


https://youtu.be/d3AEdEUPxIo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The Smiths



Good times for a change

변화하기 좋은 시간이에요

see, the luck I've had

보세요, 제가 그간 가졌던 운은

can make a good man

착한 사람도

turn bad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죠


So please please please

그러니 제발, 제발, 제발,

let me, let me, let me

이번에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let me get what I want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세요

this time

이번에는...


Haven't had a dream in a long time

꿈을 가져본지도 오래되었죠

see, the life I've had

제가 지나온 삶을 한번 보세요,

can make a good man bad

그 삶은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죠


So for once in my life

그러니 제 인생에 한번,

let me get what I want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주세요

Lord knows it would be the first time

하늘은 알고 있죠, 이게 처음이라는 것을

Lord knows it would be the first time

하늘은 알고 있죠, 이게 처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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