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Jul 10. 2023

어쩌면 우리의 사랑은 모두 짝사랑일지도 몰라

알레프(ALEPH)의 앨범 <사과향>

 짝사랑. 그런 것은 10대 시절에나 하는 줄로만 알았다. 풋내 나는 어린 마음으로 동경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 혼자만의 열병을 앓는 성장통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짝사랑의 감정선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한다'라고 말하지만 어쩐지 늘 마음이 어긋나고 만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며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결국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했던 건 '너'였을까, '너'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었을까? '너'는 나를 사랑했을까, 나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을까? 결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짝사랑을 노래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깊이 스며들 이유라면, 여러 번의 상실이 나에게 특별한 감수성을 선물한 셈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잃는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들어야 할 목소리. 섬세한 시인의 단어를 악보 위에 곱게 펼쳐놓은 듯한 앨범. 알레프(ALEPH)의 <사과향> 앨범은 가벼운 시집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듯이 찬찬히 앨범을 읽어야 한다.


 이 글은 일종의 독후감인 셈이다. 구성은 곡 소개구름조각이 뽑은 좋은 가삿말, 가사에 대한 짧은 감상으로 이뤄져 있다.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나누는 것.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사랑에 빠지는 첫 단계다.

 


Track 1. <첫사랑은 기준이 되는 걸 너는 알까>

"언젠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되어주고 싶은 그런 사랑에"

부르지 못한 노래
끝내지 못한 그림
건네지 못한 편지

 달걀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병아리는 처음 보는 움직이는 물체를 엄마라고 생각해 평생 따라다닌다. 자기애의 껍질을 깨고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 눈을 사로잡은 첫 사람이 사랑의 기준이 된다.


 고백은 상대와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이다. 상대가 마음을 받아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 극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에게 관계의 통제권을 넘기는 불안이다. 나의 마음은 확실하고 상대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열쇠는 오직 상대방에게만 있다. 그가 상황에 대한 모든 통제력을 가짐으로써 나는 그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무력한 위치에 서게 된다.


Track 2. <난 너만 사랑해서>

"행여 마음을 꺼내면 관계가 끝날까 노심초사하던 밤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겨우 용기를 내어 뱉은 것은 좋아한다는 소심한 혼잣말"

잠 못 드는 밤에
널 떠올린 나는
생각보다 위태롭고
하나도 나는
괜찮지 않아서
너의 이름만

 두 번째는 은밀한 속내를 드러낼 때의 수치심이다. 혼자서만 무럭무럭 좋아하는 감정을 키워왔다는 비밀을 드러낼 때는 마치 게임판 위에서 내가 가진 카드가 전부 드러나는 것과 같이 취약한 위치에 서게 된다. 비밀을 드러낸다는 것은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의 심리 게임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고백에는 이 불안과 수치심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있다고 더 이상 불안하지 않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부끄러워 떨면서도 사랑을 전하는 것이 용기다.


Track 3. <다신 사랑하지 않을 다짐>

"가끔은 너무 가까워져 착각도 하게 만들었다. 다신 사랑하지 않을 다짐까지 할 만큼 속상한 날들"

넌 나에게
짙은 슬픔이 되어
다신 사랑하지 않을
다짐하게 하지

 너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가 내 감정에 책임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만 점점 커져가는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원망스럽다. 이성과 감정은 늘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정작 무엇이 최선인지는 이성도, 감정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Track 4. <사과향>

"짝사랑을 할 때 온몸에서 사과향을 풍길 것만 같다.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 하는 장님이 되었다."

사과향을 풍기며
다가오는 나에게
풋내 나는 짝사랑만
손에 쥐여줬네

 고백 후에는 해방감이 있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마음속 비밀을 꺼내 놓았다는 해방감과 어떻게든 모호한 관계가 분명한 시작 혹은 끝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느끼는 안도감이다. 운이 좋다면 그는 나의 고백을 받아줄 것이고 운이 나빠도 난 혼자만의 가슴앓이를 끝낼 수 있다.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거나 달걀이 깨져 달걀프라이가 되거나. 어쨌든 달걀이란 가능성의 세계에서 병아리라는 결과물 혹은 달걀프라이라는 결과물로 종결된다. 고백이라는 것은 늘 상상 속의 가능성을 깨고 현실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Track 5. <사랑을 여읜 사람들>

"왜 진정한 사랑은 상상 속에서 현실이 되는지 사랑을 실현시킨 사람들이 있다면 알려주길."

진정한 사랑은 왜
상상 속에서만 현실이 되죠
슬프네요
예쁜 말들로 꾸며봐도
삶은 절망과 철망 사이에서
피고 지네요
여기 사랑을
여읜 사람들을 구해줘요
놀라지 말고요
사랑과 평화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침묵이 되었나요

 '여의다'라는 단어는 가족이나 가족 비슷하게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을 뜻하는 말이다. '사랑을 여의다'라는 표현은 어떤 식으로든 이별, 끝, 죽음을 연상하게 한다. 상상 속에서는 완벽했던 고백이 현실에서는 차갑게 거절당했다거나, 고백도 못해보고 짝사랑하는 떠나보내야 했을 수도 있다. 어떤 사연이 있든 혼자서만 쌓아온 내적 친밀감이 상실되었고 그것은 가까운 가족과의 이별에 버금가는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Track 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테니"

사랑을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만의 방식으로
뜨겁고 차갑게
끝까지 실수 한대도
기억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길 멈추지 마요

 깊고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을 때의 그 온전히 충만한 느낌은 오직 사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이 좋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누군가와 또다시 사랑에 빠지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내가 가진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니까.


Notice!

-가수 알레프는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브런치에는 조곤조곤 연필로 눌러쓴 듯한 시가 여러 편 업로드되어 있다. 최근 책을 준비한다고 하니 고운 가삿말을 책으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어로 쓴 雪海나 영어로 쓴 Mild Jazzbox의 Morning Sun이나 Waterloo를 들어보면, 외국어도 능통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노래에 잘 녹여냈다. <사과향>이 짝사랑을 다루는 시집이라면 Mild Jazzbox앨범은 여행기 같다. 이 또한 한 권의 책을 읽듯이 가사와 함께 천천히 곡을 읽어보시길.


 -아래 링크에는 알레프의 브런치 주소, 인스타그램, <사과향> 앨범 유튜브 영상이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공식계정이고 소소한 일상 주제로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알레프 브런치

알레프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T5zhhGYqjFQ

대표 사진출처 : 멜론 매거진

앨범 표지출처 : 벅스 뮤직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