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주눅 들지 않는 토마토 링귀니

잘못 만든 바질 토마토청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

by 구름조각

얼마 전에 토마토 청을 담았거든요. 근데 실패했어요.

지옥에서 보낸 저주받은 바질 토마토청 같네요...


일단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자면 일단, 새콤한 맛이 부족한 대추 방울토마토였던 게 아쉬워요. 한 알 먹었을 때 상큼하게 터지는 새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달기만 하고 새콤함이 부족하더라고요. 또 생 바질을 넣지 않고 마른 바질을 넣어서 신선함이 부족했어요. 근데 분명 레시피에는 생 바질 잎을 넣는 건데, 제가 그냥 냉장고에 있는 마른 바질 잎을 넣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네요. 마른 바질을 듬뿍 넣으면 향이 강해서 좋을 줄로만 알았죠.


완성된 토마토 바질청은 바질이 너무 많아서 마른 풀냄새가 날 정도였어요. 이대로 에이드를 만들어 마셔봤자 상큼한 맛은 덜 할 테니, 다음에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실패하긴 했지만 이대로 버리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실수하면 실수한 자리에서, 실패하면 실패한 자리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얼마 전에 만든 토마토소스와 함께 볶아서 먹는 토마토 파스타예요. 마침 토마토소스를 만들 때 설탕을 넣지 않아서 껍질 벗긴 달콤한 방울토마토가 들어가니 맛이 더 좋더라고요. 흔하게 쓰는 스파게티 면이 아니라 링귀니라고 조금 더 두꺼운 면을 사용한 덕에 소스도 잘 묻고, 씹히는 맛도 좋아요.


링귀니 면을 소금물에 6분 정도 삶아 팬에 옮겨준 다음 토마토소스를 듬뿍 넣고, 토마토 바질청에서 토마토만 쏙쏙 건져서 팬에 함께 볶아줍니다. 중간 불에서 소스와 함께 끓여서 면이 소스와 잘 어우러질 시간을 주는 거예요. 예쁜 그릇에 옮겨서 파마산 치즈 가루를 뿌려줘요.

제 생각엔 이탈리안 음식에서 사용하는 정통 MSG가 파마산 치즈가루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에든 파마산 치즈가루를 뿌리면 감칠맛과 짭짤함이 배가 되니까요. 저는 치즈 가루 형태로 된 걸 사용했지만 다음엔 덩어리로 된 파르메산 레지아노를 써보고 싶어요. 즉석에서 슥슥 갈아내면 보기에도 더 멋있어 보이겠죠?


그리고 그 위에 구워 먹는 치즈를 앞 뒤 노릇하게 구워서 올려줬습니다. 이거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조합 아닌가요? 구운 치즈를 올린 토마토 파스타라니 당연히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쫄깃하게 늘어지는 고소한 치즈가 산뜻한 토마토소스와 어울려서 정말 맛있더라고요. 요즘 부라타 치즈를 올려서 섞어 먹는 게 종종 보이던데, 부라타 치즈는 부드러운 크림 맛이라면 이렇게 구워 먹는 치즈는 짭짤 쫄깃한 맛이니 색다른 조합일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굵게 갈아서 향긋한 후추를 뿌리고 요즘 집에서 키우는 스위트 바질의 잎을 하나 올렸어요. 단연코 하얀 치즈빨간 토마토소스 초록색 바질의 조합은 이탈리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죠. 신선한 바질의 향이 식욕을 더 돋워 준답니다.


어렸을 때 학교 미술시간에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사인펜으로 그려놓은 선이 다 번졌지 뭐예요. 조금만 생각했으면 수성 사인펜이 물에 번진다는 걸 알았을 텐데 바보같이 내가 실수해놓고 속상하다고 엉엉 울어버렸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달래주면서 살짝 번진 것도 괜찮다고 위로해줄 때까지 그렇게 진상을 피웠답니다.


그렇게 조그마한 실수에도 울고, 실패의 기억을 오래오래 곱씹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실수한 자리에서 한번 웃고 말아요.


내가 실수했구나. 다음엔 다르게 해 봐야지.


로운 걸 배웠다고 웃어버리죠.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거기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요.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야지.

여기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 가야지.

이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만이지.


실수와 실패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성숙한 어른의 모습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좀 자란 것 같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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