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탈리아의 파스타야, 우리나라 음식으로 치면 칼국수 정도의 소박하고 친근한 음식이 아니던가요? 파인 다이닝에서 한 접시에 2만 원씩 받아가며 한주먹만큼 나오는 파스타는 영 어색합니다. 마치 전복, 해삼, 낙지를 넣고 육수는 한우 양지로 고아서 만든 칼국수 같아요. 맛이야 있겠지만 너무 부담스럽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파스타는 늘 만만한 음식입니다.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은 재료를 탈탈 털어 만들 수 있는 쉬운 요리. 오히려 볶음밥은 고슬고슬하게 볶으려면 꽤 신경을 써야 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고 느끼는 데요. 반면 파스타는 면을 삶는 동안 있는 재료를 술술 볶다가 면넣고 소스 넣으면 끝입니다. 소스야 냉장고 한편에 항상 있는 굴소스도 가능하고. 간장이나 크림소스, 우유, 토마토소스를 넣으면 그만이니 저에게는 라면보다 약간 더 손이 가는 음식 정도겠죠.
오늘은 2kg의 방울토마토를 껍질 벗겨 바질 토마토 청을 만들었고, 큰 완숙 토마토는 똑같이 껍질을 벗겨 토마토소스를 만들었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빨간 토마토에 맛이 차오르고 있어요.
커다란 냄비에 양파를 올리브유에 달달 볶다가 마늘도 한 스푼, 버터도 크게 한 스푼, 말린 로즈메리 조금 넣어서 볶으면 향이 끝내줍니다. 와인 조금 부어서 향을 더하고 껍질을 벗긴 말랑한 토마토를 우르르 쏟아 은근한 불에 푹 익혀주세요. 토마토를 쿡쿡 찔렀을 때 힘없이 흐물 해 질 정도로 끓인 다음, 한 김 식으면 핸드블랜더로 곱게 갈아서 소스로 만들어 줍니다. 일단 이렇게 만들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면 아주 든든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에 사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토마토 철에 토마토소스를 여러 병 만들어 보관하는 것을 토마토 김장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아마 겨우내 먹을 김치를 냉장고 가득 채워 놓은 뿌듯함과 같은 것이겠죠.
그런데 토마토 냄새에 질려 버리기라도 한 걸까요? 토마토를 끓이는 동안 생각나는 건 하얀 생크림을 넣은 크림소스 파스타입니다. 적당히 페페론치노를 넣어 매콤하게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유난히 면요리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몇 번은 라면, 우동, 잔치국수, 비빔국수 등을 돌아가면서 먹고, 주말이면 반드시 한 끼는 면요리로 먹습니다. 특히 모두가 좋아하는 면요리는 골뱅이 비빔면입니다. 저는 항상 골뱅이를 무칠 때 겨자를 한 스푼 넣어 약간 남아 있는 비린맛을 잡고 톡 쏘는 감칠맛을 더해줘요. 그럼 소면을 잔뜩 삶아 놔도 늘 부족합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인기 있는 면요리 중, 유독 외면받는 건 이 파스타 요리예요. 서양 음식 싫어하는 아버지가 패쓰! 요즘 다이어트 중인 어머니가 패쓰! 느끼한 음식 싫어하는 동생이 패쓰! 파스타를 환영하는 건 저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파스타를 만들 때는 온전히 제 입맛대로 만듭니다. 버터도 한 덩이 던져 놓고, 간은 짭짤하게, 크림을 부어도 너무 꾸덕한 건 싫으니 국물처럼 떠먹을 수 있는 정도로 요리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게 냉장고 털이 크림 파스타. 남은 새송이 버섯도 넣고, 파프리카도 넣고, 양파, 마늘, 페페론치노 넣어서 매콤한 크림 파스타를 만들고. 여기에 남은 노브랜드에서 산 저렴한 샹그리아 와인 한잔. 배부르고 기분 좋고 천국이 따로 없네요. 소박하게 즐기는 저만의 천국입니다.
사실 조회수가 1만 회 넘었는데 셀프로 축하를 할까 말까 하다가 크림 파스타에 와인 한잔 마셨습니다. 사소한 일일 지도 모르지만 전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다니, 얼마나 고맙고 놀라운 일인지.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잖아요. 인터넷 공간이라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확률을 계산해 보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오지 않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전 문과였으니까요... 수학은 잘 못해도 요리는 잘하니 확률 계산 대신 오늘의 식탁을 찍어서 자랑해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중에 파스타의 장점이 하나 더 생각났습니다. 간단하고 맛있는데 제법 때깔도 좋네요. 축하 음식으론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