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LP 턴테이블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하나 샀다.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없기도 했고, 외이도염 때문에 이어폰을 자주 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참에 하나 장만하자 싶었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비싼 모델을 사면 그 값어치만큼 애용할 자신은 없었기에 비교적 저렴한 모델을 찾다가 그 스피커를 발견했다. 노래를 틀면 작은 모조 LP판이 돌아가는 게 귀여워서 보자마자 샀던 걸로 기억한다.
사고 나서 한 이 주일 정도는 스피커를 꽤나 자주 썼다. 그때쯤 몸살이 났었는데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노래를 틀어두기도 했고,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옆에 두고 듣기도 했다. 할 일이 없으면 미니 LP판이 빙빙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기도 했다. 내 방에 새 물건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 뒤로는 스피커로 노래를 틀었는지 안 틀었는지를, 아니 스피커의 존재 자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이제 더는 "새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들을 노래가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노래가 듣고 싶어져서 스피커를 책상으로 가져왔다. 내가 그렇게나 진득이 쳐다보던 미니 LP판 위에는 새하얀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손으로 대충 털고 그냥 바로 노래를 틀었다. 뭐 어때, 진짜 LP판도 아니고 노래 듣는 데만 지장 없으면 됐지, 하고 생각하면서.
강렬한 애정은 대체로 오래가지 못한다. 그 애정의 대상이 스피커가 되었든, 휴대폰이 되었든, 신발이 되었든, 가방이 되었든 간에 살 당시에는 기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을 대충 쓰게 된다. 본디 사람이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강렬한 욕망을 느끼는 법이기에 무언가를 눈앞에 가져다놓는 데 성공하면 그 뒤로는 이전과 같은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그 물건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결핍이 있었던 때로, 그 물건이 새것이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누군가에 대한 나의 애정은 빛이 바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 품는 애정도 마찬가지였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유행을 타지 않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진다. 오래 알고 지낼수록 더 좋아지는, 결코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